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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어 고민인 청년들에게

5살 꼬맹이가 알려주는 훌륭한 답

by 달하

극성 엄마로 살기 싫어서 아이가 가능한 시간까지 최대한 자유롭게 사고하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 어떤 교육도 강요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경찰이 되겠다는 말에 걱정부터 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말에 내심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 그걸로 뭐 극성이냐 싶겠지만 처음이 힘들지 갈수록 바라는 게 생겨버릴까 겁부터 난다.


어느 날 아들과 티비를 보는데 콩순이(애들 만화)가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야 하는 일 때문에 새요(극 중 부엉이 마법사 인형)가 여러 가지 직업들을 체험하게 해 준다. 콩순이는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벌꿀을 채집하는 사람이 되기도 소방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전부 다 해보겠다고 한다.


일개 애들 만화였는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 당당함에 콩순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반드시 무언가 하나를 적어내야 하지 않았던가. 적어내지 않으면 오답처리를 하고 엄한 답이라도 적었다가는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지 않았던가.


아들에게는 이런 고민 자체를 안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도 그저 엄마인가 보다. 주기적으로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아주 어릴 때는 경찰차가 되고 싶다거나 렉카차(왜 유독 렉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경찰관 소방관도 아니고 차가 되고 싶다고 하니 아직 뜻을 모르는 것 같아 좀 더 커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주말, 다시 물어봤다.


- 아들,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음.... 나는... 아무것도 안될 거야!


내 머리 위에는 느낌표가 크게 떴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이제 경찰차는 경찰관이 타고 소방차는 소방관이 타는 것을 아는데, 특정 사람이 아닌 아무것도 안되고 싶다고 한다. 콩순이가 다 되고 싶다고 했던 것만큼이나 훌륭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어릴 때 꿈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항상 목표의식을 갖고 꿈을 위해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30대가 져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도전정신은 강요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목표에 대한 레퍼런스를 보며 비슷하게 살아가는 게 과연 도전인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정해진 답 안에서 비슷하게 살아가는 건 누구든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장래희망은 그렇게 가져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떤 배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이 브라운관을 보고(이렇게 표현한 거 보니 옛날 사람이 분명하다) 웃고 우는 모습을 보고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장래희망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가졌을 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어릴 때 반드시 적어내야 하는 장래희망 때문에 고정적으로 '화가'라고 적어 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시도도 안 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저 교육과정 중 하나의 토픽에 불과했을 뿐, 사실 그들은 나의 미래에 크게 관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래희망이나 꿈이 없다는 것은 목표의식이 없다고, 도전적이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때문에 장래희망이 없는 게 고민이라고, 꿈이 없다며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꿈도 장래희망도 미래에 대한 배팅일 뿐이다. 물론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며 상상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와 자아가 있는 청년에게는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미래를 살고 있는 자들의 몫이다. 꿈을 꾸라고 강요할 것도 없고 갖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어차피 꿈은 정해둔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할 것이고 때가 됐을 때 자연히 자신의 삶에서 필요하고 즐거운 일이 생긴다. 마음이 지시하는 일, 그것을 따르면 된다. 그마저도 없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삶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짤막한 순간의 최선들이 모아졌을 때 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패를 가지고 나중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매 순간 무조건 열의를 다하고 굉장히 열심히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살면 피곤하다. 그저,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잘 해낸다면 그걸로 됐다. 조금 못해도 괜찮다. 다음 순간에 다시 잘하면 된다.


화가가 꿈이었던 나도, 연극인이 꿈이었던 남편도 어릴 적 장래희망과 다소 동떨어진 일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 그렇게 엄청나거나 멋진 인물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그리 하찮게 살고 있지 않으니 눈 딱 감고 한 번 믿어봐도 좋다. 고민할 것도 많은 나이에 꿈이 없다며 고민하는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 말기를 바란다. 차라리 이번 주말에 얼마나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지를 고민하는 편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의 대답인 아무것도 안될래는 장래희망이 무엇이냐에 대한 명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5살 꼬맹이에게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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