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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의 갑이 되었다.

회사원에게 마무리가 중요한 이유

by 달하

첫 회사의 무너진 로망

모두가 토익과 스펙에 매달리는 예비 졸업생, 스펙없이도 업계에 안착할 수 있다는 IT회사 취업을 위해 30여 군데 면접을 전전하며 겨우 웹에이전시에 취직을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었던 나는 IT업계라면 다 구글 같은 줄 알았다. 얽매이지 않는 복장 규정과 자유로운 사고를 마음껏 펼쳐 날개를 달 수 있는 곳이라는 로망을 가득 안고 전쟁터로 향했다. 열정 하나로.


그렇게 웹에이전시 입사 후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말인지 방구인지 되지도 않는 것을 요구하는 고객사부터 이제 막 입사한 신입에게 구글직원 수준의 창의력을 바라는 대표, 코딱지만 한 회사에서 왕따 문화가 판치는 회사 정치, 월화수목금금금을 몸소 체험하는 강도 높은 업무량. 회사가 다 이런 건가 하는 생각에 버텨볼까 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약값이 더 들겠다 싶어 일 년 채 못 채우고 이직을 결심했다.


퇴사하겠다는 말에 대표는 불만이 뭐냐고 물었고 갑회사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회사 사람들 장단에 맞추는 것도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얘기했더니 콧방귀를 뀐다. 아직 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다른 회사 가면 뭐가 다를 것 같냐고.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반성하리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경기도 오산. 대표라는 사람이 신입사원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이 깃털처럼 가볍다.




내 앞날을 걱정(?)하던 팀장

나름대로 앞길은 찾고 퇴사하는 게 좋겠다 싶어 다시 면접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래도 일 년 좀 안되게 채웠다고 나름 업계 용어들이 익숙하다. 어찌어찌 이직이 확정되고 퇴사 회식을 하던 날, 타 부서 팀장이 그동안 쌓아온 나와의 정을 생각해서 - 참고로 그는 나와 함께 일한 적도 딱히 없다 - 한 말씀 주신단다.


회사란 자고로 버티는 자가 승자라고 우리 회사 정도의 불합리함도 버티지 못하면 너의 이 업계 커리어는 금방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네가 좀 큰 회사 가서 갑이 되면 뭐가 달라질 것 같냐고, 이 바닥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잔을 건넨다. 자기 말이 뼈저리게 와 닿는 순간이 빠른 시간 내 올 거라며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과 함께.


결론적으로, 그의 말을 듣고 퇴사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은 단 하나도 내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IT업계에서 꽤 잘 지내고 있고 괜찮은 회사에서 만족스럽게 일을 한다. 그것도 제법 많은 팀원을 이끄는 팀장으로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다.


대표나 나에게 가르침을 선사한 팀장이나 돌이켜보면 첫 회사의 선배들은 그릇이 참 작았던 것 같다. 서로를 헐뜯고 그 자리를 꿰차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글러먹었다. 회사는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곳은 반드시 소멸되거나 멈춰있거나 둘 중 하나다.


신입사원 당시의 나는 24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기 때문에 대표든 팀장이든 그들의 말이 현실일까 봐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생각보다 첫 회사만큼 굴리는 곳은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설령 체력적으로 힘들더라도 정신적으로 힘든 수준은 아니었던 걸로 봐서 첫 회사를 잘못 만난 것은 분명했다.




낯익은 회사명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너무 많이 진행되다 보니 외주 디자인 에이전시 회사를 찾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됐다. 그래, 나도 한때 우리 회사 정도 규모의 회사를 고객사로 맞이해서 일한 적이 있었지 하고 그때를 떠올리니 지금이 얼마나 좋은 상황인가 싶더라.


그렇게 팀장 미팅 - 한 달에 한 번 투명한 업무 공유를 위해 열리는 회의 - 에 참석하여 다른 팀의 업무를 듣는데 낯익은 회사명이 들린다. 앞으로 우리 프로젝트를 맡길 외주 디자인 에이전시를 구했다고 말한다. 어라? 첫 회사의 이름이다. 물론 당장은 우리 팀 프로젝트의 외주로 함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와 맞닥뜨릴 일은 없을 것, 그럼에도 그 회사의 갑 회사가 됐다고 생각하니 인생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동료가 소속된 팀에서 첫 회사와 함께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내부에서 말이 많은 회사니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주고 시안만 보고 섣불리 결정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건넨다. 첫 회사 안에 있을 때 디자인 시안에만 공을 들이고 나머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돈 받으면 장땡의 마인드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슬며시 귀띔을 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디자인 시안은 그럴싸하게 나왔지만 까 보니 개판이었던 산출물. 결국 첫 회사의 신입사원들은 시간을 갈아 넣으며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겪었던 모습이기에 그들이 참 안타까웠다. 정말 한결같이 엉망인 회사다. 어떻게 일은 끝냈지만 이후 첫 회사에 큰 프로젝트는 절대 안 맡기면 안 되겠다는 이사님의 말에 역시 사람이든 회사든 마무리가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느꼈던 순간들

퇴사하는 마당에, 다댐벼!!!

회사를 다니면서 마무리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다. 창업이나 금수저라 부모님 회사에서 일할 것이 아니고 일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계속할 예정이라면 특히 '퇴사의 순간'에서 마주하는 마무리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보통 퇴사를 할 때 마음먹는 것 중 하나가 '할 말 다하고 퇴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빡침을 다 풀고 가야 속이 다 시원하겠다는 그 마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 직장인은 그것을 꾹 참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그나마 원하는 모습에 가까운 회사를 갈 기회라도 생긴다.



1. 빡침을 온몸으로 표현했던 퇴사

앞서 말한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사실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이 업계는 혼자 일 할 수 없기 때문에 타 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나의 경우 개발팀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같은 팀 사람들 보다도 개발팀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3번째 회사는 개발팀을 자회사로 두고 있었고 기획팀이 본사인 독특한 구조의 회사였다. 나의 팀장은 정말이지 지금까지 만난 최악의 상사였고, 본사 소속이었던 나는 우리 팀보다 일잘러 개발자들이 모인 자회사 사람들과 일할 때 더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퇴사를 하면서 술을 양껏 마신 뒤 팀장에게 쌓였던 감정을 마음껏 쏟아냈다. 내게 했던 팀장의 발언을 하나하나 꺼내서 반박하고 당신의 잘못을 알아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펑펑 우는 나를 개발팀은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퇴사 후 무직의 시간을 갖던 어느 날, 그 자회사에서 기획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됐다. 자회사의 대표인 개발팀장과의 친분이 있기에 연락을 했지만 내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우리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감정을 너무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과 일을 하면 힘들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맞다. 내가 대표였어도 퇴사 당시 내 모습을 봤다면 나를 채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꽤 진상이었다.


능력이나 친분만으로 회사를 취직하는 것은 어렵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능하면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사람을 고용하려 할 테고 그것은 퇴사의 모습이 어떤지와 직결되어 있다. 자회사였던 개발팀도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잘 맞았겠만 좋지 않은 마무리에서 나의 입사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조금 억울했지만 매우 이해한다. 퇴사를 하는 이유도 중요하겠지만, 퇴사 사유보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다.


2. 대부분의 회사는 '직원 추천' 제도가 있다.

또 다른 회사에서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내게 이 좋은 회사를 떠나면 후회할 거라나 뭐라나 했던 팀장이 있었다. 그녀의 말인즉슨, 회사가 규모 - 대기업 계열사였다 - 도 있고 별 일 안 하고 꿀만 빨면 되는데 뭐하러 다시 전쟁에 나가냐는 것이었다. 직장생활 다 똑같다고 그냥 편하게 노후나 준비하자고.


예전 회사에서 몸담았던 팀의 업무는 매우 쉽고 지루한 업무들을 주로 맡았다. 그녀는 루틴한 업무가 적성에 딱 맞았나 보다. 퇴사 카드를 꺼낸 나에게 그녀의 발언은 매우 무능해 보였고 그저 잘 새겨듣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뒤 그동안 감사했다고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회사는 대규모 투자를 받아 규모가 더욱 커졌고 결국 대기업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회사로 코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당시 친했던 동료들에게 그동안 잘 견뎌낸 거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네고 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무능했던 팀장인 그녀가 잘렸다고 했다. 회사가 상장을 하니 돈만 받아가는 월급루팡부터 잘라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그녀가 내게 연락을 해온다. 요즘은 어디 다니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회사명을 알려줬다. 그렇게 유명한 회사는 아니지만 나름 업계에서 이름은 들어본 회사니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 나에게 TO를 묻더라. 사실 회사에서는 팀원을 채용 중에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추천할 수 없었다. 추천할 만큼 그녀의 마무리는 내게 좋게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무리를 잘하면 생기는 일

회사의 마무리는 여러 번 강조에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잘 참아내고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고 나온다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거기에 일까지 잘했다면 금상첨화! 두 번째 회사에서의 마무리는 엉망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마무리에 상당히 신경을 썼었다. 그 결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1. 제법 알려진 잡지사의 러브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김과장님'이다. 연락처가 제법 헤픈 내게 번호가 저장되지 않을 정도로 친했던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지? 싶었지만 우선 아는 척을 하고 본다.


김과장님은 자신이 최근에 회사를 옮겼는데 나와 잠시 일했던 기억이 좋아 연락을 했다고 한다. 김과장님이 퇴사를 했던 때가 기억이 났다. 엉망인 우리 팀장과 싸우느라 고생하시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어서 한참 후배인 내게 강단 있게 프로젝트를 이끄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며 나중에 자기가 자리를 잡으면 꼭 데려가겠다고 흘러가듯 말씀하시고는 회사를 떠나셨었다. 과장님의 떠나는 모습을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김과장님은 전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물어 가며 내 번호를 찾아냈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러브콜을 보내왔다. 회사 이름을 말씀해주시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 꽤 알려진 매거진 회사에 입사를 하셨고 팀을 새로 꾸리신 것 같았다. 당시 나는 회사를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 더 다녀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과장님은 언제든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결국, 연락은 드리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나를 기억해주셨다는 것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2. 로켓에 합류하자는 러브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뒤는 커리어를 헛되게 쌓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었다. 누가 보면 내 회사인 줄 알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한 회사에 몸을 담게 되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회사가 너무 개판이라 견딜 수 없을 때는 정중하게 퇴사를 밝히고 마무리가 최대한 아름답게 기억되도록 노력했다.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한 유망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왔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며 모바일 최적화가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는데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앱서비스를 만드는 꽤 매력적인 회사였다. 이력을 보니 유명한 회사 출신의 능력자들이 즐비한 회사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내게 채용 제안을 해왔다.


알고 보니 지난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의 추천으로 내 연락처가 전달되었고, 나는 해당 회사에 면접을 가게 됐었다. 지리적 위치나 여건 등이 맞지 않아 아쉽게 거절 의사를 밝히게 됐지만 전달한 동료에게 추천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동료는 나의 마무리가 좋게 기억되지 않았다면 추천할 이유도 없다고 했고, 회사생활에서의 마무리는 이럴 때 빛을 발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회사는 얼마든지 개판일 수 있지만 나의 인성까지 개판으로 만들지는 말자. 앞선 예들은 내 경험에서 나온 단편적인 모습들이지만 실제로 수많은 직장인들이 퇴사하면서 할 말 안 할 말 다 꺼내서 나중에 저평가되는 경우를 제법 봐왔다. 일명 '레퍼런스 체크'에 그 모습이 걸리는 순간, 심혈을 다해 준비했던 회사의 이력서가 물거품 될 확률이 높아진다.


마무리는 개인에게나 회사에게나 중요하다. 첫 회사의 갑이 된 지금, 그 회사는 내게는 좋지 않은 기억의 마무리로 기억되는 회사지만 나는 지금 우리 회사가 그들에게 좋게 기억되길 바란다. 때문에 혹시나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도 '갑질의 횡포'를 할 생각이 없다. 물론, 맘 같아서는 괘씸해서 막 부려먹고 싶지만 개인의 감정으로 현재 회사의 좋은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깎아내린다면 참아내야 마땅하다.


마무리를 항상 생각하며 회사생활에 임하자. 혹시 모를 일 아닌가.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지원했을 때 나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빛을 발하게 될지도. 혹시 지금까지 잘못 쌓았다 하더라도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된다. 혹시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꼭 기억하자. 떠나는 회사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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