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판교 업계인의 속마음
봄바람 휘날리며~ 흔들리는 벚꽃잎이 만개하는 봄, 흔들리는 벚꽃만큼 마음도 흔들리는 시기다.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는 마당에 자기들만의 리그에 빠진 동네가 있다. 판교다.
최근 게임업계를 중심으로(넥슨을 시작으로) 개발자 연봉 인상이 시작되면서 게임이 아닌 IT업계 연봉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개발자 얘기니까 하고 안심했는데 비개발자도 같이 오르고 있단다. 나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열 받는다.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친오빠에게 요새 업계가 왜 이러는 거고 그 연봉은 사실인지를 물었다. 그거 다 언플이라고 말이 되냐고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오빠는 "응, 사실이야"라고 리턴을 날렸다. 더불에 요즘 개발자 모시는 게 매우 힘들다고, 연봉으로라도 꼬시지 않으면 좋은 개발자를 찾기 힘들단다. 저 기사가 진정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일명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에 다니지 않으면 다 비주류처럼 여겨져 서러운 마당에 비개발자여서의 설움과 말도 안 되는 연봉 인상까지, 업계인으로서 극도로 소외감을 갖게 만드는 요즘이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네카라쿠배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게 일하는 것 같지 않은데, 갈수록 일은 더 많아지는 것 같고 연봉은 계속 속상하다.
이런 생각 들 수 있다. 이 회사에서 이렇게 연봉이 오를 바에 다른 회사 신입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너무 이해가 된다. 연봉은 매년 올라야 옳다. 경력은 쌓이는데 연봉이 제자리라면, 오르긴 하는데 인상폭이 콩알만 하다면 말리지 않는다. 판교로 떠나라!
하지만 나처럼 떠날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그들과 함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글을 써본다. 나는 왜 이 회사에 남아야 하는가.
(핑계에 가깝지만)
인간적으로 판교 너무 멀다. 강남권이나 분당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걱정 없겠지만 정 반대 지역에 사는 내가 판교로 다니기 위해서는 편도가 평균적으로 2시간 반은 걸리게 될 거다. 지금 2시간 거리만으로도 충분히 피폐하다. 사람답게 살려면 내게 판교는 좋은 선택은 아닌 듯하다. 이사를 가면 되지 않냐고? 회사 따위 때문에 삶의 터전을 원치 않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짓이다.
아무래도 가장 크다. 지금까지 별별 정신 나간 인간들, 정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어있는 인간들, 그냥 병신 등 너무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왔다. 지금처럼 쿵짝이 잘 맞는 사람들을 버려가면서까지 몸값을 높여야 하나 싶다. 회사를 다니며 모든 사람이 나와 잘 맞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리고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학교 다닐 때도 잘 맞는 친구 찾는 게 어려웠는데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한 집단인 회사에서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복권 당첨만큼 굉장한 일이다. 일부 그 결이 맞는 사람들만으로 남을 이유는 충분하다.
한 번이라도 회사에서 박수를 받은 경험이 있는가? 박수 치는 곳에 남아라.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회사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박수 칠 때 떠나면 당장의 연봉은 높여갈 수 있다. 허나 내가 아무리 이 회사에서 날고 긴다 했더라도 옮긴 회사에서는 하찮을 수 있다. 박수를 받았다면 회사의 방향과 목표를 인지하고 잘 수행해냈다는 의미다. 물론, 회사의 모두에게 박수를 받을 수는 없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몇의 사람에게 박수를 받았다면, 같이 의지를 다져볼 응원단이 있다는 것.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은 적어도 회사생활에는 반드시 알맞은 말은 아니다.
남아야 하는 이유를 3가지나 얘기했음에도 판교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위 3가지 내 생활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떠날 생각으로 이미 머릿속이 가득할 것. 그럼 아래 해당하는 항목도 자신에게 대입했을 때 어떤지 생각해보자.
(자신을 알라)
언플에 나오는 연봉은 과연 내 것인가. 모든 회사는 직급이나 나이로 연봉을 칼같이 측정해주지 않는다. 결국은 현재 받는 연봉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조금 높게 맞추는 것이기에 언플에서 나오는 연봉 1억은 내 얘기가 아닐 확률이 높다. 회사 입장으로 생각해보자. 입사하는 모두에게 그 금액을 지급한다면 망한다. 특출 난 누군가에게 지급되는 연봉이고, 최근 게임업계 개발자가 귀해진 만큼 특정 업종의 연봉이 그렇다는 것이다. 업무가 같다면 도전해볼 만 하지만 다른 직무를 갖고 있다면 그 연봉은 내 연봉이 아닐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어떻게 서류합격을 하고 면접을 보게 됐다 치자. 네베라쿠배정도 규모라면 대체로 한 번으로 면접이 끝나지 않는다. 때문에 먼저 휴가가 충분한지 체크해야 한다. 면접 보기 위해 여러 번의 휴가를 밀집해서 쓰게 될 가능성, 그 어려운 연차를 반납하고 봤던 회사의 면접에서 합격할 확률을 따져봐야 한다. 만약 그대가 면접 전문가라면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냐만 면접이라는 것이 즉흥연기에 가깝기에 한 방에 붙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없다면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넣어봤다가 아까운 시간만 버릴 수 있다.
나 정도면 솔직히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확률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연 내가 판교의 다른 회사에서 흔쾌히 받을 정도의 수준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실력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를 한 뒤 이직을 고려해야 한다. 자기 평가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서류나 면접을 통해 그나마 있던 자신감도 잃을 수 있다. 실제로 그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고 판단된다면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떠나라 판교로!
거 연봉 올리기 딱 좋은 날이네
앞선 이야기는 나의 현재 상황이 이직하지 못하기에 나를 다잡기 위한 핑계일 뿐, 사실 요즘 이직하기 참 좋은 시기다. 업계에서 인재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많이 본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판단력이 흐릿해질 때다. 그동안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다면, 지금이 시도해보기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연봉 1억, 일반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에게 이 얼마나 짜릿한 액수인가. 일개는 막상 세금다떼고 하면 얼마 안 된다고(약 666만 원) 하지만, 난 근처도 못 가는데!? 충분히 고액인데!? 어차피 회사 다니면서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을 텐데 내가 난 놈도 아니고 연봉 1억은 충분히 흔들리고도 남을 액수다.
게다가 판교 라인에 밀집된 회사들의 네임벨류는 물론 각종 인센티브 제도(인센으로만 차 뽑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삐까뻔쩍한 카페테리아와 사내식당 등 가히 한국형 실리콘밸리라 칭할 만큼 복지면에서도 강점이 많다. 앞서 말한 걸림돌 중 '물리적인 위치'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만 아니라면 한 번쯤 면접이라도 경험해볼 만하다. 어떤 회사든 항상 미친놈은 있게 마련이지만 좋은 사람도 분명 있고, 인정받는 것도 스스로 하기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견딜 만큼 견뎌봤는데 이 죽일 놈의 회사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판교의 문을 두드려보자.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연봉 1억이 주인공이 그대가 될지도.
아, 나도 연봉 좀 올리고 싶다.
(한숨을 크게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