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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05. 2021

내 말이 그 말이란 말 같지 않은 말

그 생각은 네 것이 아니야

회사를 다니면 여러 상사를 만난다. 일은 참 잘하는데 말을 거지같이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일은 못하는데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물론 일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상사가 가장 많은 비율로 존재하고, 아주 희박하지만 일도 잘하고 말도 잘 통하는 상사가 있기도 하다.


나의 경우 어떤 상사를 참아낼 수 있는가의 기준은 항상 '일'이었다. 말을 병신같이 해도 일을 잘하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경력이 점차 쌓이다 보니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회사의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럴 거면 이왕 사람답게 대화하는, 즉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능하면 말이 잘 통하는 상사와 일하고 싶었지만 경험해보니 말이 통하는 상사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때문에 말이 통하는 한 명의 상사만 있어도 말을 더럽게 하는 사람, 전달하는 말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 그냥 말을 못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케이스를 참아낼 수 있었다. 나와 말이 통하는 상사 하나면 대부분의 경우는 참아낼 만했다.


그런데 딱 하나, 말을 바꾸는 상사는 참아내기 쉽지 않더라. 가령 내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둔갑하거나 반대로 내 생각에 적극 동의하다가 자신보다 높은 상사의 한마디에 갑자기 내 의견에 반대하며 내게 화를 내는 것. 말 바꾸기 선수들은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지금도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말 바꾸기 선수의 대표적인 2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거야

SI업체를 다니던 때였다. 회사는 국가의 정부사업이나 대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일부 시스템을 만들거나 유지보수를 하는 일 따위를 도맡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갑의 횡포에 시달렸고, 직원들의 퇴사율은 꽤 높았다. 사장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들을 활용해서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다.


당시 옴니아를 시작으로 아이폰3GS로 막 넘어왔던 시절이라 '터치'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였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키오스크를 제작하는 정부사업 덕분에 터치 기술에 대한 기본 기술이 있었고 iOS, 안드로이드 개발이 가능한 개발자도 갖추고 있던 회사였다. 거기에 사장이 욕심은 많아서 GPS를 설정할 수 있는 하드웨어도 사들여두었기에 위치기반을 활용한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당시 스키장을 밥먹듯이 드나들던 선배가 스키장은 물리적으로 범주가 넓으니 거기에서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기술도 다 있겠다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자체 서비스를 키워내기 위해 모두가 동참해서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나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기획안을 짜내 상위로 보고를 했다.


당시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 모르는 대표 직속 연구소(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았던)에서 기획안을 검토했고 스키장 가면 그냥 노느라 바쁘지 뭘 친구를 찾는데 애를 쓰겠냐며 기획안을 거절했다. 다른 아이디어를 다시 짜오라며 제대로 보지도 않고 팽개치고는 휙 들어가 버렸다. 상심이 컸다. 짬도 없고 힘도 없을 때라 그렇게 그냥 포기해야 되는가 싶었다.


그때, 사장님이 지나가시면서 왜 그렇게 시무룩하냐고 물었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더니 방으로 오라며 기획안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장님도 스키장 회원권을 보유하고 직원들하고 가끔 다녔던지라 스키장은 너무 넓고 얘들 연락하기 힘들다고 무릎을 탁 쳤다. 딱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력이 다 들어간 적합한 서비스라며, 진행해보자고 한다. 그러고는 연구소 실장을 불러서 GPS 기기를 우리 프로젝트에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연구소 실장은 사장의 눈치를 살피더니 "아~ 맞네. 그래, 내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친구랑 재밌게 놀려면 친구를 찾아야 된다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사장님" 실장은 적극 지원하겠다며 사장님 방에서 나와서는 내게 한 마디를 건넨다. "네가 아까 설명을 잘못했어, 자칫하면 못할뻔했잖아. 다음부터는 설명 좀 똑바로 해주세요." 역시 자기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쓴웃음을 짓고 자신의 연구소로 들어간다.







역시 그렇죠?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맡은 서비스는 국내 여러 쇼핑채널(오픈마켓, 종합몰 등)로 통합된 데이터를 각각의 채널 규격에 맞게 전송하는 서비스였는데 내부에는 유사한 성격을 지닌 서비스들이 여러 개 존재했다. 총괄팀장은 이런 게 여러 개 있을 필요가 있냐며 하나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그중에 어떤 것을 잔류할지에 대한 결정을 위해 여러 데이터들을 추렸다.


서비스의 운영/기획 주체는 우리 팀이었지만 회사의 이상한 구조상 통계 데이터는 타 팀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나는 그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 팀의 팀장에게 데이터 요청을 했고, 타 팀 팀장은 쌓인 일이 많다며 일정을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주목받지 못하는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그의 업무에서는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당장 차주에 보고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를 닦달하고 찾아가고를 반복해서 데이터를 겨우 받아냈고, 나는 매출과 전송량을 체크하여 각 서비스들을 분석했다. 내부 데이터와 외부 타 경쟁사들의 기능들을 분석해서 어떤 서비스가 잔류 대상이 되어야 할지 결정을 했고, 그에 따른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데이터를 추출해준 타 팀의 팀장이 갑자기 미팅 제안한다. 그렇게 우선순위 밖의 업무라고 생각하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소 당황은 했지만 팀장이니 어쩌겠나. 팀장은 내게 어떤 서비스를 잔류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서비스적으로 A가 좀 더 최신 버전이라 안전하지만 경쟁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에는 조금 오래된 서비스라도 B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고민이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매출도 A보다는 B에서 더 많은 매출이 일어나고 있었다. 타 팀의 팀장은 그럼 B로 가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내 생각에 적극 공감했다. 의외의 반응에 나도 내심 뿌듯했고 뒤늦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고마웠다.


총괄에게 잔류할 서비스를 보고하는 날, 내 의견에 동의했던 타 팀의 팀장은 자신도 의견을 드릴 게 있다며 들어왔다. 나는 왜 B가 잔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발언했고, 그 팀장도 내 의견에 매출 데이터를 들먹이며 설명을 더했다. 그러나 총괄은 내게 기획자 맞냐며 회사의 방향에서 안전은 중요하다고 A로 갈 것을 요구했다. 나는 일개 팀원이었기에 타 팀이었지만 그 팀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B에 대한 어필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타 팀 팀장은 놀라운 말을 꺼낸다.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 B는 아무래도 리스크가 너무 크죠. 달하님이 회사 측면에서 고민이 좀 부족한 거 같네요." 그렇게 당연하게 B로 가야 된다고 말했던 그 새끼는, 아니.. 그 팀장은 총괄 앞에서는 그냥 잘 따르는 충성견이었을 뿐 진심으로 내 서비스에 관심을 가져준 것이 아니었다. 잘 풀리면 내 덕, 안 풀리면 네 탓. 그게 그의 전부였다.


보고가 끝나고 그에게 물었다. 저와 이야기하실 때는 B가 당연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B가 더 강점이 많은데 왜 A라고 말씀하시냐고. 팀장은 내게 말한다. "내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A가 당연히 맞죠."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고마웠던 마음은 사라졌고, 그래 이게 회사였지!라는 생각은 다시 나를 다잡았다. 역시 회사는 이렇게 거지 같은 곳이었다.


그 팀장은 매출이 좋은 서비스이니 어떻게든 발이라도 담가볼까 싶었던 것 같다. B로 가면 서비스가 프로젝트 성으로 커질 것이 눈에 보였을 거고 그 결정이었다면 제가 한 번 해보겠다며 나를 거느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행히(?) 회사는 A를 선택했고 그는 스스로 보기에도 허접한 서비스가 잔류하는 것에 관심이 떨어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사의 참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나는 허접한 인간 아래서 일하지 않게 됐으니 말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위험하다. 설령 진짜 내가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네가 정리를 참 잘해주었구나 라고 생각하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오해가 없는 사이라면 발언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조심 좀 하자. 특히 당신 아래 1명의 후배라도 존재한다면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당신은 후배의 말을 낚아챈 도둑놈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내 의견은 다른데 상사에게 무조건 적인 충성을 위해 '제 말이 그 말입니다'도 조심하라. 특히 후배와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보고에서는 후배가 이렇게 생각한 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상사 의견에 반대되는 선택을 후배 탓으로 감싸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동감을 표해놓고 말을 바꾸는 경우 이로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어느 쪽이든 그 의견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온전하게 발언자의 것이고 그게 설령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나와 반대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상사 눈치 보느라 '내 말이 그 말'을 내뱉는 것은 안된다. 상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고 상사의 말에 공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얘기를 들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다시 함께 고민해보겠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열심히 쌓아둔 공을 손쉽게 낚아채는 사람이 회사에는 참 많다. 내 말이 그 말이라는 말을 자주 꺼내는 사람이 목격된다면 빠르게 손절하자. 언제 어느 순간, 공들여 쌓아 둔 탑의 주인이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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