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을 강요받는 세상에 바치는 글
- 김대리, 이거 다음 주까지 처리해
- 팀장님, 말씀하신 스펙으로는 개발팀 일정이 안 될 거 같은데요..
- 개발팀 일정을 왜 김대리가 신경 써?
- 요청 주신 내용이 개발이 되려면 개발팀 일정이 확보가..
- 김대리. 좀 당당하게 요구해! 그 정도 리더십도 없어?
- (...)
리더십, 필요해?
회사 사이트 인재상에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단어가 주제로 던져졌다! 회사원이라면 대부분에게 요구되는 능력이지만 그 실체를 볼 수 없는 신비한 능력.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린 건지 알 수 없어 한참을 헤매게 된다는 바로 그 능력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팀장이 말한 '그 정도 리더십'은 무엇이고 지금 그 리더십이 필요한 건가? 우선, 나도 정확한 뜻을 잘 모르니까 사전의 뜻을 빌어 확인해봐야겠다.
리더십(Leadership)
무리를 다스리거나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 ‘지도력’으로 순화 [네이버 표준국어사전]
무리를 이끄는 지도력이라 했다. 어떤 집단을 이끌어 가는 힘, 그것이 리더십이라 정의되어 있다. 회사라는 집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놈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팀장들이 팀원들에게 위의 사례처럼 '내 스타일의 리더십'을 알게 모르게 강요하고 팀원들은 그 리더십을 강요받는다. 팀장 스타일의 그 리더십은 정말 팀원에게 필요할까?
리더십을 둘러싼 오해들
사실 리더십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회사원에게 약 팔기(?) 참 좋은 능력이다.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인 연구가 되고 있는 분야임에도 회사는 단편적인 리더십에 집중한다. 대체로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열정적이고 자신감 있게 할 말 하는' 리더십을 원한다. 꽤 멋져 보이거든! 세상 힘차고 강인한 단어 다 갖다 붙여놓으면 그게 바로 회사가 바라는 리더십. 그 하나의 리더십만 보고 자라온 우리 회사원은 리더십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리더십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오해 1. 리더십은 나서는 것이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리더십 = 자신감' 공식이 성립되는 것 같다. '리더'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보다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게 '나서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자신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의 포인트가 생긴다. 그렇게 앞으로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것이 자신감인가? 자신감은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이지 꼭 앞으로 나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굴지 않아도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무리를 이끈다. 대체 누가 나서라고 그런 거야?
오해 2. 외향성이 리더가 되기 쉽다?
이거 정말 너무 큰 오해다. 얼마 전 지난 회사의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언니는 리더가 잘 어울려. 좀 외향적이잖아' 음.. 이게 무슨 소리지? 누가 이 아이에게 리더는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했는가? - 심지어 나는 딱히 외향도 아니다. - 주로 외향형 리더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회사에서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리더라는 존재는 대범한 성격이어야 한다고 주입시킨다. 그럼 외향이라고 리더십이 자동으로 배양될까? 그럴 리가. 리더십은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다. 기본적인 성격이나 성향이 리더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본인이 알고 있는 유명한 기업의 오너를 떠올려보라. 외향성이 아닌 경우가 제법 많을 거다.
오해 3. 리더는 남자가 유리하다?
이 오해는 찬반의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 쓸지 말지 고민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라 적어본다. 과거 중앙집권 시절에는 남자가 리더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남성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떠올려보면 주로 강인하고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을 떠올린다. 아마도 어지러운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시대에는 남성의 힘과 권력의 리더십이 좀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근데 우리 지금, '원더키디의 2020년'을 살고 있지 않은가? 시대는 바뀌었다. 현대시대는 기술의 발달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건지 점점 사람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답게 다니는 회사'가 중요해지는 만큼 수평적이고 따뜻하게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힘으로 내려찍는다고 찍는 대로 산출물이 나오는 시대는 저 멀리 갔다. 성별의 차이는 리더가 되기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리더십은 시대를 반영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리더십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통제와 제어가 필요한 시대와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한 시대에서 각기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모습은 다르다. 강의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리더십 강의 영상이나 글을 열심히도 찾아봤는데 좀처럼 확립되지 않았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아직 과거에 머물러 여전히 강해야 하고 나서야 하는 리더십의 모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구버전의 리더십과 신버전의 리더십이 충돌하는 진귀한 장면을 목격한다. 나의 아빠와 오빠의 이야기다.
회사원 경력 43년 차, 외향형
아빠는 20살부터 회사를 다녔고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긴 세월 동안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이제 60세를 훌쩍 넘긴 아빠인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회사에 와서 일 좀 해달라고 찾는다. 연륜은 무시 못한다.
회사생활 40년 차의 외향형 성격. 느낌 빡 오지 않는가! 아빠는 예상대로 굉장히 대범하다. 뭘 해도 시원시원하다. 이 세상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획득하고, 필요하면 못하는 것은 없다는 주의다. 실패를 하더라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쿨함도 있다. 아빠는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모으는데 능했다. 대범하고 해결사 같은 모습을 보고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아빠는 회사 사람들이 대체로 본인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회식마다 불려 간다고.. 워워, 아빠 설마 그거 다 참석하는 거 아니지?
아빠에게 위 상황에 대해 물었다. 아빠가 팀원이면 먼저 팀장에게 다시 되묻겠다고 했다. 역시 대범하다. 회사의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고나면 그제야 개발팀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 파이팅 넘치게 해 보자고 권유를 한다. 목표한 일정에 결과물이 잘 나온다면 일하면서 발생한 작고 사소한 감정들은 보상된다는 논리다. 결국 해냈다는 동질감으로 동지애가 생기고 서로가 더 끈끈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빠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고 회사를 위해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해결해내고야 만다는 아빠의 리더십은 '과제지향적 리더십'이다.
회사원 경력 22년 차, 내향형
오빠는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일을 지금까지 하는 사람이다. 40대가 된 오빠는 지금도 여전히 실력이 좋고 경험도 많기에 업계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로 알고 있다.
15년간 회사생활을 했고 유명 대기업의 팀장을 거쳐 지금의 내 나이쯤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빠의 회사생활은 조용하고 우직했다. 최대한 튀지 않으려 노력했고 어떤 결정이든 늘 신중하고 감정의 변화가 요동치는 경우도 없다. 인간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한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인정받은 케이스라 사람을 모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인다. 적을 잘 만들지 않기 때문에 딱히 사이가 나쁜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 친한 사람도 딱히 없다.
동일한 문제가 놓였을 때 오빠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혼자 고민을 먼저 할 것 같다고 했다. 가능한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논리로 먼저 준비하고 안 되는 경우는 설득이 될 때까지 계속 주기적으로 시도한다. 무조건 해봅시다의 파이팅보다는 차분하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협의를 통해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낮추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일을 끝내는 스타일로 신뢰와 협동심이 강조되고 그로 인해 프로젝트를 잘 끝내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주의다.
오빠는 실력이 누구보다 출중하더라도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고 그런 겸손한 모습들이 오히려 리더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문제를 가능한 모두가 만족스럽게 끝내는 게 좋다는 오빠의 리더십은 '관계지향적 리더십'이다.
사회 구조의 혼잡도와 과제들의 복잡도가 높아지면서 리더십의 선호도 또한 변화한다. 리더십의 트렌드가 바뀜에 따라 소통하는 방법이나 조직의 문화까지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IT업계는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라 공부할 것이 넘치는데 리더십의 모습까지 변화되고 있다. 리더 근처도 못 갔으면 마음이 좀 편했을 텐데 어쩌다 팀장이 되어서는 변화되는 리더십도 공부해야 한다. 배움은 끝이 없다. 힘들어 죽겠다.
애초에 옳은 리더십은 없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사실 리더십을 논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것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세월이 흘러 리더십의 트렌드가 바뀐다 해도 '리더십은 어때야 한다'라는 정답이 없다는 것. 책임감이 밑바탕이 되었고 저마다의 성격을 최대한 활용하여 리더로서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왔다. 문제의 성격에 따라 과제를 중심으로 하는 리더십일 수 있고 관계를 중시하는 리더십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하나 틀리지 않다.
리더십에 대한 책이나 글이 무수히 많이 쏟아진다. 건강한 리더가 되는 방법이라고 해놓고는 팀원들에게 이렇게 해야 예쁨 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팀원들한테 예쁨을 받을 수 있을까? 한 번 시도해보고 좀 알려주라. 그게 정말 되는지.. 물론, 크게 기대는 안 한다.
리더는 따르는 사람(Follower)이 있어야 리더가 된다. 따르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 리더를 따라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팀장 또는 그에 준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거나 1명이라도 본인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잘난 사람들 리더십을 배우려 하기보다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리더십을 찾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당신의 리더십을 잘 가꿔서 누군가의 인생에서 멋진 캡틴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리더십 강요하는 당신, 혹시.. 꼰대세요?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이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다. 잡스가 하면 아주 그냥 다 좋아 보이니까 다 따라 하고 싶어서 열심히 배워 시도해봤는데 실패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면, 그대는 잡스가 아니거든!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잡스만이 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틀린 리더십도 아니고 옳은 리더십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리더십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잡스도 아닌 당신의 리더십이 정답인 것처럼 팀원들에게 '나의 리더십을 갖고 일하라'고 강요 좀 하지 말자. 이렇게 길게 얘기했는데 '에이, 그래도 기본적으로 리더십은 강인하게 나설 줄 알아야지'라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면 당신은 곧 꼰대가 될 상이로구나!
나의 예전 꼰대 팀장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보자.
"김대리, 그 정도 리더십도 없어?"
"너는 애가 리더십도 없냐? 그냥 시켜!"
꼰대 팀장이 나에게 자주 던지던 문장이었다. 영업왕 출신이었던 팀장은 아마도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해 준 팀장이었다. 너도 나처럼 되어야 한다고, 너는 너무 애가 무르고 소극적이라고. 그렇게 해서는 회사생활 오래 못한다는 충고를 받아왔다. 나는 그 팀장의 리더십을 거부하여 결국 퇴사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고, 팀장의 우려와 달리 회사를 10년째 아주 잘 다니고 있다. 그 팀장은 나의 리더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따르는 사람을 이끄는데 실패했다. 되묻고 싶다.
"그 정도 리더십도 없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