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지겨울 때도 됐는데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오빠, 나까지 4명, 아주 일반적인 핵가족화된 가정이다. 그러나 이 가족 구성은 빙산의 일각, 엄마 집(외가) 8남매 친척이 거의 다 같이 근방에 모여 살다 보니 사실 핵가족의 소박한 단란함은 느껴본 적이 없다. 멀어봐야 30분 거리 내, 그렇게 다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산다.
요즘 시대에는 친척과 자주 왕래하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이 집안은 오히려 왕래가 없는 것이 서운한 집안이다. 동생도 많고 언니, 오빠는 물론 이모, 삼촌 등 사람도 많고 위계도 복잡해서 남편이 가족들 이름 외우느라 고생 좀 했다. 다들 가까이 살다 보니 서로 싸웠다 풀어졌다, 서운했다 좋았다를 반복하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집안 규모가 어메이징 하다 보니 할머니는 뭐든 손이 무척 크다. 그 할머니의 후손이라 그런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손들이 큰지 저녁 먹자고 모여도, 가볍게 맥주 한 잔 하자고 모여도 잔치가 열린다. 술은 또 어찌나 잘들 드시는지 모였다 하면 짝으로 놓고 먹는 집안. 나도 어디 가면 술 좀 마신다는 소리 듣는데 집안에서는 약하다고 혼줄이 난다.
집안 가족들이 다 같이 행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장소, 비용이 든다. 생일이라도 한 번 치르려면 고깃집을 통째로 빌리거나 룸을 서너 개는 빌려야 한다. 아이들까지 전부 오는 날에는 정말이지 결혼식을 방불케 한다. 때문에 조금 더 가까이 지내는 집안끼리 작은 모임들을 갖는다. 집안의 소규모 동아리인 셈이다.
우리 집은 물리적인 거리로나 심리적인 거리로나 8남매 중 5번(사람이 많아서 등번호를 매긴다.) 이모의 집안과 가깝다.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 이상은 이모네와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보는 날엔 무슨 일이 난 거 아니냐며 그렇게 호들갑을 떤다.
우리는 저녁식사 외 주기적으로 파티를 주최한다. 파티 멤버는 주로 5번 이모네와 함께할 때가 많지만 1~8번까지 가족이 종종 교체되며 다채롭게 구성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이 파티는 이유도 참 각양각색. 집에 먹을 게 없다고, 기력이 딸린다고 열기도 하고 오늘은 기분이 좋다고 또 나쁘다고 열기도 한다. 파티의 주인공은 매번 바뀐다. 어느 날은 내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이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거들뿐, 목적은 하나다. 삼겹살!
Because of 편입성공
편입시험을 모두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던 때, 계속되는 탈락에 지쳐가고 있었다. 예비로 들어간 학교는 순번이 빠질 생각을 안 했고 안정적으로 합격할 거라 믿었던 학교마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됐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별생각 없이 메일을 열었는데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합격을 했다! 편입에 성공을 했다. 당장 마루로 달려가 "엄마! 나 합격했어!"를 외쳤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어머머머!!!" 물개 박수를 치셨다. 연이어 던진 말,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삼겹살 구워 먹자!"
Because of 승진성공
회사에서 진급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회사 규모가 있다 보니 진급시험은 인재원에 출퇴근하며 3일 동안 풀타임으로 교육을 받고 진급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급을 못한다. 시험의 구성은 회사원의 기본 소양으로 불리는 회계의 기본기와 기초 상식으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상식이 부족한 탓에 애를 좀 먹었지만 2번째 기회에서는 다행히 패스를 했고 일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 대리님이 되었다. 진급시험 통과 후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날도 어김없이 메시지가 왔다. "아이고~ 김대리님 고생했다, 축하해. 오늘 삼겹살 구워 먹자!"
Because of 이별
20대 중반, 제법 오래 만났던 남자와 헤어졌다. 헤어진 당일 친구들에게 공표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셔댔다. 이별 파티 한 번 거하게 하고 다음날 일어나니 김치 콩나물국이 얼큰하게 끓여져 있었다. 속이 다 시원한 김치 콩나물국을 원샷하는 순간, 외출했던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잔소리 수류탄이 떨어질게 뻔하다. 밥 먹던 수저를 멈추고 슬픈 척 표정관리를 하고는 말한다. "엄마, 나 헤어졌어.." 주연급 배우의 연기를 하고 나서야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을 건넨다. "아휴... 그래, 오늘 저녁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
Because of 실직
우리 집안은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집안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잘렸다는 소식을 선뜻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온갖 걱정과 우려가 나에게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올 것이 빤히 보인다. 그렇게 최대한 늦게까지 말하지 않고 남편의 실업급여 시간까지 끝나고 나서야 겨우 남편이 잘렸다는 소식을 알리게 됐다. 더불어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는 말까지 겨우 전하고 나서 잔소리 폭격을 당할 것에 대비해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뗀 아빠의 한 마디, "그래, 어쩔 수 없지. 저녁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
Because of 미세먼지
미세먼지 수치가 '매우 나쁨'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필수로 차고 다니지만, 미세먼지 강도가 셀 때는 사실 이 정도로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미세먼지가 좀 강하기라도 한 날이면 얼굴도 간지럽고 목도 괜히 칼칼한 게 뭘 먹어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칼칼해진 목으로 흠-흠 목을 끓고 있노라면 저만치 주방에 있던 엄마가 무심히 툭 던진다. "오늘 목도 아픈데, 삼겹살 구워 먹자"
Because of 최신폰
아빠 휴대폰이 먹통이 됐다. 전화가 오도 가도 않아서 이제 바꿀 때가 됐구나 싶어 친구의 대리점을 나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도 많고 유난히 빨간불도 많이 걸린다. 약속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 아빠의 휴대폰을 고른다. 이번에는 개통이 말썽이다. 평소 같았으면 10분 내로 끝났을 개통작업이 통신장애로 지연이 된 것. 예정된 시간보다 1-2시간 정도 더 걸려서야 겨우 아빠의 휴대폰이 새 것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해가 뉘엿이 기울었다. 슬슬 배가 고파지려고 하니 아빠가 말한다. "오늘 고생했으니 삼겹살 구워 먹자"
이쯤 되면 그냥 삼겹살을 먹기 위해 사건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 연관이 없어도 우선 던지고 보는 한 마디, "삼겹살 구워 먹자". 가벼운 한마디에 비해 상차림 준비는 너무나 무겁다. 잘게 간 고추, 다진 마늘, 알싸한 고추장과 고소한 된장, 참기름 향까지 더한 뒤 섞어 만든 엄마표 쌈장과 쌈에 같이 곁들일 장아찌 삼총사 - 간장에 절인 고추, 곰취, 매실 - 정도는 기본이다. 혹시 없는 경우 아삭한 오이소박이나 매콤하게 무쳐낸 노각무침 정도 밑반찬은 꼭 준비해야 한다.
앞서 말했던 8남매의 2번 이모는 쌈 야채 농장을 한다. 하나로마트 인기상품을 놓친 적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수경재배라 파릇파릇하니 식감이 정말 좋다. 부드럽게 아삭한 적상추와 청상추, 쌉싸름한 향이 솔솔 나는 치커리와 빨간 줄기가 오도독 씹히는 독특한 식감의 적근대, 코를 살짝 찡하게 하는 매콤함의 적겨자까지. 이 정도 쌈 종류는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삼겹살 파티가 시작이 된다.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두툼한 고기를 올린다. 올리자마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온 사방에 기름이 튀고, 비탈진 팬 사이로 흐르는 기름의 통로 끄트머리쯤에 자른 버섯과 통마늘, 감자, 두부 등을 올린다. 고기 옆면 기준으로 반 조금 아래까지 익으면 고기를 뒤집고 통로에 있는 온갖 애피타이저도 뒤집어 바근바근하게 만든다.
생고기 색을 띠지 않을 정도로 익었을 때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르고 다들 취향에 맞게 쌈을 준비한 뒤 고기가 익어가길 기다린다. 그렇게 자주 먹는 삼겹살인데도 고기를 마주하는 눈빛은 한결같이 초롱초롱하다. 나의 경우 상추에 치커리를 얹고 곰취를 올린 뒤 고기와 엄마표 쌈장을 듬뿍 찍어 올려 크게 한 쌈 입에 넣는 기분이 참 좋다. 그렇게 한 쌈씩 입에 넣고 나서야 그 날의 기쁜 일, 슬픈 일을 공유하며 소주를 한 잔 들이켠다.
술이 함께하다 보니 서운한 이야기라도 나오기 시작하면 신파극이 되기도 한다. 뭐가 그리도 서운한지 붙잡고 울고 화내고를 반복하다가 이내 다시 까르르 웃으며 막을 내린다. 매번 있는 이런 상황도 이제 제법 지겨울 때가 됐는데 참 질리지도 않는다. 아마도 향도 맛도 완벽한 삼겹살과 이래도 저래도 내편인 가족과 함께라서 겠지.
각자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지인들,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회사일이 바쁘고 육아하는데 지쳐 연락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사람들도 나를 잊어가고 만남도 줄어든다.
그토록 바쁘고 힘든 순간에도 한결같이 꾸준히 곁을 지켜준 사람들은 '가족'이다. 내가 바쁘다면 아무리 바빠도 밥 먹어야 힘난다고 한 술이라도 떠먹여 주고 힘들고 우울하면 한 잔 하고 잊으라고 응원해준 사람들. 기쁠 때는 자기 일인 양 나보다 더 행복해하는 사람들. 계산적인 인간관계에 치를 떨며 나 외의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순간에도, 내가 그러든 말든 당신들은 나를 믿는다고 했던 나의 가족들.
이런 건강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는 확실히 행운아다. 삼겹살 파티는 단순히 고기를 먹기 위한 모임의 의미를 넘어 가족들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고 가족애를 더 단단히 하는 시간이다. 피어나는 연기만큼 웃음도 함께 피어나는, 어떤 힘든 일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 치료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때로는 이유 없이 가족이 그리운 순간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삼겹살 파티를 했다. 끈끈한 8남매처럼 그들의 자식들인 우리 세대도 이 삼겹살 파티 문화가 계속 유지되기를. 견고한 가족의 결속력이 무엇인지 남들은 다 몰라도 우리 가족의 후손만큼은 대대손손 이어가기를 바라본다.
생각난 김에 오늘은 내가 먼저 던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