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아닌 마음의 크기가 문제
"엄마, 다들 왔나 보다"
"그러게, 엄청 소란스럽네"
외가는 가족행사나 명절이 되면 8남매가 모두 할머니 댁으로 민족 대이동을 하는 날이다. 할머니 댁은 3층이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이 있는지 계단을 올라가는데 벌써부터 복도에 울려 시끌시끌하다. 평수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거실에 온 가족이 엉덩이를 맞대고 앉지 않으면 스탠딩은 불가피하다. 입구까지 사람이 점령했다. 마치 남녀노소, 연령 구분 없는 클럽에 온 느낌이랄까.
입구에 위치한 신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온 신발이 뒤죽박죽 되어있어 이따 집에 갈 때 내 신발 찾기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제멋대로 널브러진 신발들을 비집고 겨우 내 신발을 한쪽 구석에 안착한 뒤 할머니네로 성큼 발을 들인다.
안녕하세요~
인사만 건넸을 뿐인데 이모, 이모부, 삼촌, 숙모 그리고 조카들까지 방에서 나와 온 가족이 한 번에 인사를 건넨다. 싫은 것은 아닌데 뭐랄까, 귀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들어가자마자 맥주캔을 건네는 이모와 오랜만에 봤다고 반기는 친척동생들, 저만치 가만히 앉아서 미소 짓고 계신 할머니까지 매번 겪는 상황이지만 참 한결같이 정신없다.
겨우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몸을 기댄다. 기댐과 동시에 이모부가 옆에 착 붙어 앉아서는 안부를 묻는다. "요새 회사 바쁘다며. 얼굴이 반쪽이 됐네" 얼굴이 안쓰러워져도, 살이 토실토실 올라도 언제든 나에게 예쁘다고 해주는 우리 이모부.
회사가 다 그렇지 않겠냐고, 좀 쉬면 좋겠다고 입 밖으로 꺼내기라도 하면 세상 난리가 난다.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우라고, 우리 예쁜 조카 몸 망가지는 거보다 큰일이 어딨냐며 난리를 치며 술을 가지러 가신다. '아.. 그냥 괜찮다고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면 막내 이모가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온다.
이모는 앉자마자 하소연을 시작한다. 친척동생이 술을 너무 많이 먹고 다닌다며, 툭하면 새벽에 들어와서 걱정이라는 한탄을 한다. 나는 이모에게 다 큰 성인인데 뭐 그런 걸로 걱정하냐고, 그 나이에는 다 그렇다며 나도 그랬다고. 근데 잘 먹고 잘 산다고 이모를 안심시킨다. 그제야 조금 한 숨을 놓으면서 그래 우리 조카만큼만 잘 컸으면 좋겠다고 방긋 웃고는 주방으로 다시 간다.
이번에는 외숙모가 다가와 더 예뻐졌다고 내 손을 꼬옥 잡고 쓰다듬는다. 5번째 삼촌 부부에게는 약간의 장애가 있다. 때문에 대화가 일반인처럼 원활하지는 않지만 눈빛 교환만큼은 원활하다. 나를 보면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또렷이 수 분을 쳐다보신다. 나도 그에 보답하려 밝게 웃으며 별 일 없냐는 안부인사를 건넨다. 고개를 끄덕이는 숙모를 보며 나도 같이 그 고운 손을 쓰다듬는다.
우리 가족에게 나는 항상 예쁘고 착하고 제 앞가림 잘하는 아이로 이미지가 굳혀졌다. 시궁창 같은 현실이고 착하지도 않지만 가족들을 실망시키는 게 싫어 실제로 그렇게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뭐, 사실 예쁜 건 아니어도 큰 걱정 안 시키고 제 밥그릇은 챙기고 있으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 에헴.
우쭐하고 있자면 이 집안의 서열 2번 큰 이모가 슬며시 옆에 앉아 가만히 웃으며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을 이모는 아무 말 않고 앉아서 내 옆을 지킨다. 나도 함께 가만히 가족들을 보고 있다가 이모에게 왜 웃고 있냐고 물으면 이모는 대답한다.
"그냥, 엉덩이 맞대고 붙어있는 게 좋잖혀"
"할머니 집 큰 데로 좀 이사해야 하지 않아, 이모?"
"지금도 좋은데 뭐~"
"그래도... 사람은 많은데 방이 너무 비좁아"
"으이그, 방 좁은 건 살아도 사람 속 좁으면 몬산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눈 앞에 놓인 현상만 바라보고 당장의 불편함을 얘기하는 내게 우리 가족들이 이 비좁은 곳에서 지내도 괜찮은 이유를 설명한다. 마음의 크기가 넓으니 불평도 없다는 것. 이모의 혜안에 적잖게 놀란다.
많은 사람들이 집의 크기와 좋은 결과가 비례하는 것처럼 말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아이가 뛰놀기 충분치 않아서 평수를 늘려야 한다거나, 고3 수험생에게 따로 공부하는 공부방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하는 것들. 집 크기가 마치 반드시 더 좋은 성과로 이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들.
이모의 막내 손주는 할머니, 엄마와 3대가 조그만 집에 함께 모여 산다. 위치도 대중교통의 도움이 원활하지 않은 시골이다 보니 매번 독서실을 이용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3대가 모여사는 그 작은집에서 별도의 본인 공부방도 없이 거실에서 우직하게 공부를 해왔다. 그 아이는, 그렇게 고려대에 입학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나의 10대도 18평 집에서 4명이 옹기종기 살았었다. 그렇게 다 큰 애들이 둘이나 있었어도 공부든 일이든 큰 불만 없이 지냈던 것 같다. 나는 따로 방이 없었기 때문에 오빠가 없는 날에는 오빠 방을 이용했고 있는 날은 거실을 이용하며 학교 숙제도 하고 대학 과제도 했었다. 집이 좁았어도 크게 불평 없이 지냈었고 지금은 알아서 밥벌이할 만큼 둘 다 잘 컸다.
나도 재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아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더 큰 평수로 갈걸 그랬다고 후회한 적이 있다. 아들이 5살이 된 지금, 어차피 아파트라 집에서 뛰놀 수도 없는데 뭘 그렇게 큰 집을 원했나 싶다. 이모 얘기를 듣고 보니 오히려 가족끼리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게 더 좋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집 크기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옹졸한 내 마음의 크기가 문제였다. 이모 얘기를 듣고 가족들을 바라보니 불편함은커녕 세상 즐거워 보였다. 밥상머리에 침이 튄다고, 옆사람보고 좀만 옆으로 가라고 엉덩이를 밀치면서도 좋다고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가족들의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이모에게 한 수 배운다며 역시 이모라고 추켜올렸다. 이모는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서둘러 다시 음식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집안의 어르신 할머니부터 이모들의 자녀의 자녀까지. 4대가 모일 수 있는 집안인 것도 신기하지만 좁은 방에 모여도 불평 한 번 없는 것도 신기한 집안. 이런 집안의 일원이라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엉덩이 맞대고 서로의 호흡을 가까이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