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엄청난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만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웹기획자를 모집하는 모집요강의 '자격요건'을 둘러봤다. 거의 대부분은 업무 연관성이 높거나 관련 업종의 경력직을 선호하고 자격요건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긍정적 사고, 인사이트와 같은 태도나 감각적인 자격요건부터 특정 툴의 숙련도, API관련 기획, UX리서치, 데이터 분석 등 전문적인 자격요건까지 상당히 광범위하다.
이런 자격요건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몇 년 이상 경력자'. 경력직만 선호하는 자비 없는 세상, 신입은 일을 하고 싶어도 자격부터 안된단다. 아니, 그렇게들 경력만 선호하면 신입은 어디서 일을 하나?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렵다는 공채 시스템을 통과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작은 회사로 들어가 어떻게든 경력을 쌓아야 한다. 경력자들보다 열심히 뛸 체력도 있고 선배님들의 노하우를 충분히 흡수할 의지가 있는데, 대체 왜! 신입은 거들떠도 안보는 것인가!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기획자를 채용하는 입장에서 '경력'은 그만큼 중요할까? 물론 중요하다. 그들의 노하우나 각자의 개성과 감각은 확실히 필요한 것이 맞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신입'을 절대 뽑지 않겠다는 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신입들만의 신선한 시각을 믿는 편이고, 실제로 신입에 가까운 친구들을 채용하기도 했다.
경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내온 시간 동안 누적된 노하우와 사회생활(조직 적응력), 수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단단해진 맷집 같은 것들을 갖추었기 때문.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경력직을 채용하면 어느 정도 '회사'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상태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시키는 '시간적 비용'이 상대적으로 절약된다. 때문에 기획자로 진로를 결정했다면 이처럼 시간이 흘러야만 생기는 경력직의 역량을 제외한 기본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경력과 함께 자격요건으로 항상 명시되는 '기획자'의 자격, 과연 그 자격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일까? 하나씩 따져보자.
전공부터 따져보자. 다른 업종은 모르겠고, 나는 IT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IT를 기준으로 얘기해보겠다. 아무래도 IT라는 산업 자체가 특화된 용어나 약어들이 많고 웹이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야 할 것 같으니 연관 전공은 '컴퓨터공학'이나 '멀티미디어 공학'정도를 말하는 것이겠다.
그럼, 나의 전공은 무엇일까. 무역학과다.
(세상에!! 연관성이 1도 없어!!!)
IT와 아무 연관도 없는 무역학과를 나와서 IT회사의 기획자로 잘먹고 잘살고 있다. 게다가 기획팀의 팀장도 맡고 있다. 그럼 답은 나온 거 아닌가? IT와 관련된 전공은 회사에서 용어의 익숙함이나 개발자와의 소통에서 분명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획자가 되기 위한 필수 자격은 아니다. 비전공자가 IT회사 기획자가 되는 것? 전혀 문제없다.
이해도: 어떤 일이나 현상 따위를 조리 있게 해석하거나 받아들이는 정도
조리 있는 해석과 받아들이는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기획자의 자격이 되는 것일까. 상단 자격요건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인 이해도'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있다. 이는 결국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그것은 회사 입장의 '희망'일 뿐 이해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자격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기획자에게 있어 '이해도'는 전반적인 구조나 위계에 대한 이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웹기획자'를 예로 들면 전체적으로 서비스, 솔루션의 흐름이나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서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차이나 Back end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기획자라면 다양한 서비스를 스스로 사용해보며 어떤 흐름으로 이 서비스가 흘러가고 왜 그렇게 구성이 됐는지에 대한 이해나 고민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해석해보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가 결국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채용공고에 올라온 많은 자격요건 중 문서 스킬은 필요한 자격이 맞다. 기획서와 같은 산출물은 '문서'로 표현이 되고 이 문서 작성을 위해 대부분의 회사는 MS Office(파워포인트, 엑셀)을 주로 사용한다. 요새는 개개인이 문서의 버전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인원이 문서관리를 편리하게 할 수 있는 협업 툴로 노션, Confluence을 도입하거나 슬랙, 트렐로와 같은 협업 툴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서작성 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문서작성을 위해 다루는 '도구(Tool)'에 대한 능력이다. 앞서 말했던 MS Office와 같은 문서 툴이나 프로토파이, Axure 등 프로토타입 툴을 얼마나 많이 다루었는가가 능력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서를 작성하는 '구조적, 논리적' 스킬이다. 다만 이 문서 작성 능력은 단기간 내 올리기 어렵다. 문서 작성 스킬만 별도로 배우는 강습이나 교육이 있을 정도로 문서 작성에 대한 감각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기획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채용공고에서 원하는 '문서작성 능력'을 갖추려면 앞서 말했던 도구에 대한 능력을 먼저 습득하는 것이 좀 더 빠른 길이겠다. 기본적으로는 MS Office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대부분 학교에서 학습되기 때문에 사실 능력까지 보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아예 다루지 못하는 것은 기획자가 되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고 싶다면 프로토타입 툴을 Trial버전으로 받아서 사용하고 익혀보자. 이런 툴에 대한 이해는 향후 기획자가 되어 일을 할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채용공고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역량이 하나 있다. 바로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 즉,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특히 '협업'을 언급하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바란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왜 중요할까? 앞서 발행했던 글을 보면 기획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주 러프하게 소개했다. 기획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릴 수 있도록 협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아마도 프로젝트 내에서 가장 말을 많이 듣고 많이 하게 되는 사람일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는 기획이라는 업무가 힘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 된다.
회사마다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은 다를 것이다. 회사에서 원하는 역할이 때로는 개성이 강한 유관부서들을 리드하는 당찬 역할을 원할 수 있고, 때로는 소극적인 사람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는 역할을 바랄 수도 있다. 역할별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바라는 것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대화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이 쉽지 내 말보다 상대의 말을 먼저 납득하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상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연습을 해두자. 연습이 성공적이라면 면접에서부터 그 효과가 바로 느껴질 것이다.
'자격요건'만 놓고 봤을 때 기획자는 C언어나 JAVA와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Adobe툴을 완벽히 다뤄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서를 만들 줄 아는 수준이면 시도해볼 수 있는 직업군이다. 혹시나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기획자가 되기 위한 자격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크게 어려운 자격요건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진입이 쉬운 것뿐, 기획자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치열하고 어려운 일이다. 왜 그토록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기획자는 왜 필요한지 다음 편에서는 IT회사의 기획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한다.
*위 내용 외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프로필에 있는 [작가에게 제안하기]를 통해 메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