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청역의 자취방에서 약 20분 정도 홍제천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망원 한강공원이 나온다. 한강이라니. 서울 살이를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강만큼 설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수양대군(세조)의 오른팔 한명회는 자신의 호 압구를 딴 정자를 ‘압구정’이라 짓고 한강에서 유유자적 쉬었다고 한다. ‘한강뷰’는 지금도 성공의 상징이다.
갓 상경했을 무렵에는 혼자서 한강을 자주 거닐곤 했다. 바다는 어떤 이야기든 오냐오냐 들어주는 부모님과 같은 느낌이 든다면, 한강은 여러 가지 감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여러 한강공원의 포인트마다, 그리고 시간대마다 한강이 주는 느낌은 자못 다르다. 아침의 한강은 물안개가 피어 올라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른 아침부터 조깅과 자전거로 운동을 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나도 이처럼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에너지와 각오가 생긴다. 낮의 한강은 돗자리를 깔고 커플이나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는 행복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의 모습은 밤의 한강이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밤이면 혼자서 한강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밤의 강바람을 맞으며 복잡한 심경을 한강에 흘려 보냈다. 강물은 두 번 흐르지 않는다. 수만 년을 흘러오던 한강처럼 나의 고민도 강물에 흘러가듯 시간 지나면 별것 아니겠지, 위로가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운동으로 하루를 일깨우는 곳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휴식과 위로를 얻기도 하고, 성공의 야망이 꿈트는 장소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터벅터벅 슬픈 발걸음을 걷기도 하는 곳이다.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한강이라는 곳에서 낮에는 에너지를, 밤에는 센치한 감성에 젖으며 서울의 정취를 흠뻑 느꼈다.
양화대교까지 쭉 걷다 보면 강 건너편으로 여의도가 보인다. 밤이 늦었지만 금융가의 고층 빌딩들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 불빛이 한강에 반사되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기왕 서울에 발령이 난 김에, 언젠가는 저 여의도에서도 일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저 풍경 속 작은 불빛 하나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예상치 못한 인사이동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에 고립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나를 다잡으려 애썼다.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과의 교류는 더 어려웠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쉽사리 적응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 덕분에, 마치 과열된 엔진을 식히듯 한강의 밤바람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날도 나는 강변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여전히 낯선 이 도시에서, 한강이라는 이름의 위로를 조용히 붙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