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을지로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합정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을지로입구역까지 주말에 시험 삼아 타봤을 때는 ‘아, 이 정도면 할 만하겠는걸?’ 하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본능적으로 양손을 가슴팍에 올려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 쉴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한가롭게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이 숨 막히는 구간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장 큰 공포는 코로나 시기의 지하철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환기되지 않는 공기. 사실 언론에서도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 지하철이야말로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예민함이 극도로 높아진 시기에 밀폐되고 혼잡한 공간까지 더해지니, 지하철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라거나 밀지 말라는 이유로 고성이 심심찮게 들렸다. 임산부들은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잘 보이게 달고 있지만, 임산부석에는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꼭 한둘씩 앉아 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배려도 사라졌고, 가히 지옥철이라 부를 만했다.
여름 지옥철의 장마철에는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 사이로 축축하게 젖은 우산이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겨울의 지옥철에는 매서운 한파를 피해 두툼한 외투를 입고 지하철을 타지만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선 채로 서서 가다 보면 금세 더워지고 땀이 난다. 히터 때문에 공기는 텁텁한데 옷을 벗을 공간조차 없었다. 지하철을 내릴 때쯤이면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이후로는 조금 추워도 겨울에 두껍게 입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나는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간 외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퇴근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옥철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여유롭게 출근해 아침도 먹고 신문을 보며 하루를 준비하는 편이 정신적으로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서울 지옥철을 타면서 흥미로웠던 건 지하철역 전광판마다 있는 연예인 생일 팬덤 광고였다. 예전에는 소속 그룹명과 이름을 함께 표시했지만, 요즘은 그룹명 없이 “OO아 생일 축하해”라고 이름만 적힌 광고가 많았다. 심지어 이름 없이 별명만 적혀 있어 팬덤끼리만 공유하는 유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실제 연예인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 같은 가상 인물의 생일 광고도 보였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지하철보다 빠른 듯했다. 이제는 이런 풍경마저 익숙해진 서울 사람들은 무심하게 각자의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