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믿음
태초의 애착
첫째 아이는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처음엔 조금 낯설어하고 가기 싫어하는 표현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행동이 거의 없다.
오후에 다시 집으로 가면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에..
그러나 만약 단 하루라도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 그곳에 엄마가 없다면 아이의 믿음은, 애착은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나의 글 '나태의 나비효과'에서 나를 찾는 아이를 달래 준 그 몇 초의 시간이 애착을 깨지 않는 유일한 행동이었음을.
엄마가, 아빠가 언제든 내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 기본적인 신뢰, 애착..
허나.. 아기의 애착이 중요함을 아는 당신의 애착은, 당신의 믿음은 아직 살아있는가?
난 너 밖에 없어
사랑에 속는 가장 흔한 말.
"난 너 밖에 없어"
하지만 지내보니 나 말고도 중요한 게 너무 많더라.
친구니 일이니 사회생활이니..
정말 나 밖에 없다면, 정말 날 사랑한다면 내가 널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어야지...
내 곁에 없는 널 믿을 수 없잖아..
선택이란 버리는 것
짜장면을 선택하는 것은 짬뽕을 버리는 것.
아니, 다른 음식 전부를 버리는 것.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를 버리는 것.
아니,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것.
드라마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부모와 세상을 등지고 둘만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극단적 로맨스.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사랑..
그들은 서로를 선택하고 서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냉정한 세상에서 내 모든 것을 버리고 왜 너를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 너를 선택함으로 잃는 나의 가치를 포기하지 못한다.
난 버렸어. 아니 없어.
그래. 인정한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버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기득권은 언제나 가진 것을 놓지 못하며 가진 손아귀에 다른 이가 들어오길 바라고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당신의 손엔 무엇이 있는가?
난 선택을 해 왔기에 버렸고 잃었다.
그리고 잃어버렸기에 텅 비어버린 이 손엔 너 밖에 없다.
당신은 버릴 수 있는가?
내가 버릴 수 있는 가치가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치의 크기이다.
난 사회생활을 버린다. 승진을 버린다.
그리고 너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 선택이 우리의 궁핍한 삶 이어도, 현실을 버리는 일 이어도 넌 괜찮겠니?
내가 회식을 버리고 나온 일이 내 직장을 버리는 일과 같아진다면 넌 날더러 회식을 버리고 오라고 감히 말하진 못 할 거야..
우리는 서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하려 하는지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할 거야.
난 회식 중에도 아내가 부르면 달려간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 부르는 순간에 곁에 있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
난 다 버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다른 남자들과 다른 점이며, 이는 오로지 당신만을 향한 사랑이다.
하지만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당신의 부모 따위, 꿈 따위, 신 따위 다 버릴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을 알고 있다.
버릴 것에 대한 합의는 그저 둘 만의 것이다.
그래도 알아주길 바란다.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그는, 그의 옆에 있는 당신은, 무언가를 버렸기에 곁에 있다는 것을..
날 위해 버릴 너를 믿어
"엄마는 니가 원하면 다른 일 다 버리고 널 보러 갈게. 언제든 힘들고 외롭다면 엄마는 니 곁에 꼭 다시 올 거야."
그러곤 엄마는 직장으로 가고 아이는 언제든 돌아올 엄마를 믿는다.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 줘. 카톡 해놓으면 나도 얘기하고 꼭 갈 테니까."
그러곤 난 술자리로 가고 아내는 언제든 돌아올 나를 믿는다.
믿음은 한 마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천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당신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
애착이라는 이 사랑의 기본적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