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딱한 나선생 Jun 17. 2016

음식과 생명의 경계

27. 생명

난 회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해산물은 거의 다 싫어한다.


이게 생명체인지 음식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살어의 추억


초등학교 중학년 쯤이었을까..

서울에서 온 이모네를 대접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회를 먹으러 갔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젓가락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회'는 분명 살아있었다.


나의 순수했던 그 어린 마음에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그 생명체는 삶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저기 앞의 수족관에 넣어준다면 다시금 살아날 것 같았다.


하지만 잔인한 어른들은 그것을 보며 희롱하듯 맛있게 먹었다.

아주 싱싱하고 신선하다면서..



생명을 희롱하다


어렸을 적, 난 할머니 집에서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고양이가 개구리를 때리며 노는 것.


난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개구리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마치 장난감 개구리를 누르면 '삑삑' 바람 소리가 나듯..


고양이는 배가 고파서 먹으려는 것도 아닌 듯 했다.

그저 폴짝폴짝 도망가는 그 개구리를 쫓아가며 앞발로 톡톡 찍으며 놀고 있었다.


고양이를 딱히 좋아한 적도 없지만 그 모습은 너무 사악해 보였다.

누군가의 생명을 그리 하찮게 농락하는 모습에..



생명과 다른 가치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과 멀어질수록 가치를 잃는다.

나의 생명이 온전히 유지 됨에도 다른 생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생명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욕구 단계가 올라갈수록 높은 가치를 갖고 살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위의 욕구 피라미드를 거꾸로 봐야 한다.


다른 생명의 죽음을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가장 낮은 1단계이며, 사회적 만족과 달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그 다음 2단계이다.

개인적인 애정을 받기 위함은 3단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가 가능한 4단계이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5단계이다.


인간이 생선을 먹는 것, 고양이가 개구리를 먹는 것이 자신의 식욕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인간이 위협이 되는 맹수를 총으로 죽이는 것, 고양이가 천적은 이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직 5단계만 그 생명이 '음식'이 되므로 다른 단계의 이야기는 다른 글로 옮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음식


나는 약육강식을 자연의 원리라고 했다.

학교에서 먹이사슬을 배웠듯 아주 당연한 것이다.

생태계는 먹고 먹히는 관계로 연결되어 이 순환의 고리가 유지된다.

이 고리 안에서 절대적 약자, 절대적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먹는 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생명의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작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생명의 죽음이 음식이 되어 다른 생명의 삶이 된다. 반대로 한 생명의 삶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음식으로써 요구한다.


음식은 곧 삶과 죽음의 경계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음식의 양면


난 음식이 원래 모습 그대로를 갖고 있으면 먹지를 못하겠다.

돼지의 몸 그대로에서 막창을 꺼내어 먹는다면..

난 이 생명의 형체를 그대로 갖고 있음에 죽음으로 받아들이되 음식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먼 옛날의 인간들은 다른 생명의 죽음과 음식이 나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죽여서 사냥을 하여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했겠지..


내가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이 죽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떤 생명을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 나를 대신해 계속 죽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다른 생명을 계속 죽여야 함을 의미하니까..


내가 '살아있는 회'를 보며 생명 운운하는 건 어쩌면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반쪽만을 보는 순수함일지 모른다.

분업화 된 이 세상에서 '사냥과 손질'은 극소수가 담당하고 있다.

어쩌면 더럽고 잔인한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놓고 나는 깨끗하고 정의로운 척 하는지 모르겠다.


음식을, 생명을 다른 가치로 희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길 바란다.


다른 생명의 가치, 죽음 그 모든 가치 속에서 나의 생명 또한 유지되고 있으며, '생명'이 '음식'이 되기까지의 잔인하고 더러운 반면을 감당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음을..

매거진의 이전글 18. 이기심의 확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