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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Jun 14. 2016

'권력'에 저항한다(1)

26. 사회, 직업

주먹에 저항하다


학창 시절 가장 화가 나고 억울했던 것.

주먹을 가진 자들의 횡포.


소위 말하는 1진들의 무소불위의 권력.

그들 뒤에 호가호위하려는 2진 세력.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다수의 평민들.


싸움이라는 것은 나에게 오는 부당함에 맞서는 것.

난 아무리 센 놈이라도 1:1이라면 싸우려고 했다.

싸움의 목적이 그놈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하지만 난 1:1에서 이겼으나 1:다수로 박살이 났던 다른 친구를 봤다.

싸움에선 이겼으나 결국 전쟁에선 패배한 것이다.


난 주먹들에 맞서 싸울 힘이 없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마냥 착하기만 했다.

나도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평민에 불과했다.


아기, 아이들, 청소년의 사회도 어른들의 사회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사회라면 말이다.


내 맘속에 뿌리 깊게 남은 그 억울함은 정의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외로움에 저항하다


난 원래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랑 노는 것보다는 지속되는 소수가 좋았다.


중학교를 가면서는 1진과 그에 빌붙는 2진을 제외하면 남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착하던 친구들도 변질되는 경우도 정말 많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남녀공학이었으니 그나마의 친구도 절반을 잃은 셈이다.

한 둘 있던 단짝과의 사소한 다툼으로도 나는 너무나 쉽게 외로워졌다.


내 잘못이라면 사과를 했으나 나의 잘못이 아닌데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내 외로움에 져서 우정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주먹에 저항하는 것은 외부의 두려움에 맞서려는 것이다.

외로움에 저항하는 것은 내부의 두려움에 맞서려는 것이다.


한 치 앞의 결과가 바로 보이는 주먹 앞에서 당당히 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외로움이었지만 견딜 수 있었다.


내 나름의 옳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내가 가진 생각조차 맘 편히 꺼내지 못했다.


이 갑갑함은 당당해지자, 내 속의 말을 꼭 꺼내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위계에 저항하다


그간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활발해지기로 했다. 이전의 나를 벗어나기 위해 게임을 끊겠다는 의지로 집에 인터넷도 설치하지 않았다.


선배, 동기, 동아리 등 일주일에 5~6번은 술을 마셨다. 대학 초기의 나는 사람들이 O형으로 생각할 만큼 유쾌하고 말도 많았다.


2004년 당시에 대학에서 소위 말하는 '굴림'이라는 게 있었다. 술을 마시고 몇 시간 거리를 뛰었다. 그래도 그 굴림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동기와 선배도 함께 뛰고, 함께 땀 흘리며 오히려 전우애 같은 끈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후배로서의 예의와 의무를 얘기했지만 후배에게 술 한잔을 베풀며 선배 된 배려와 책임 또한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류에 있는 사람들,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후배들 위에 '군림'하려 했다.

우연히 그런 한 선배와 소규모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맥주를 얼마 마시지도 않아 그 선배는 나에게 술을 강요했다. 원샷을 하라더니 또다시 채우고 원샷을 하란다. 그 주변에 여자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보이고 싶었던 건지, 취하는 날 시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아무 의미 없이 술만 먹어야 하냐고 물었다. 그 선배는 후배가 만취를 해서도 선배에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먹여서 확인해야 한단다. 실제로 그렇게 시험에 통과해 그 선배의 라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난 끝까지 마시지 않았다. 아마 그 선배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몇 번 그냥 마시라고 인상을 쓰더니 그냥 입을 닫았다.


굴림이라는 문화보다도, 나이, 학번 등으로 계급화되어 있는 사회보다도 더 답답한 것은 그 안에서 그 문화와 시스템을 악용하며 즐기고 있는 자들이다.

이 사회에 나이가 있고 위아래가 있는 것을 모두 부정할 수 없다. 위아래가 있다고 무조건 그른 것은 아니다.

아래가 아랫사람으로서 따르고 해야 할 책임을 다 하고, 위는 윗사람으로서 이끌고 베푼다면 이 사회 또한 아름다우리라.


1, 2학년의 의무와 책임의 순간을 지나고 3, 4학년에는 과 활동에 그리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난 '안주류'가 되기로 했다. 주류를 거부했지만 그만큼 주류사회에서는 날 씹기 좋은 안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았다.

주먹으로 위해를 가할 청소년 시기를 지났고, 그 오랜 외로움도 함께 해줄 지금의 반려자가 있었다.


난 힘에 꺾여 살지 않겠다.

옳은 것,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살겠다.


지금의 난 교직에 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꽤 길어질지도.. 아니면 아주 단순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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