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기 힘들지?

29. 교집합

by 삐딱한 나선생
기름이 옳은가 그른가


대학시절, 난 지금의 아내와 정말 어이없는 것으로 많이도 싸웠다. 그 중 하나는 짜파게티에 유성스프를 넣느냐 마느냐였다.

나는 유성스프를 넣어야 윤기있고 뻑뻑하지 않아진다고 했고, 아내는 그 특유의 향이 너무 싫다고 했다.


나는 아내가 마음을 닫고 나를 대한다고 느꼈고, 아내는 내가 강압적으로 자신을 대한다고 느꼈다. 우린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대판 싸웠다.


기름을 넣을지 말지는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저 좋고 싫음일 뿐이다. 하지만 좋고 싫음을 함께 맞춰가고 함께하기 위해 싸워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다행히 우린 아직도 밥을 같이 먹고 있다. 이젠 너의 짜파게티를 덜고 나의 짜파게티에 유성스프를 뿌릴 지혜는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지혜의 밑에는 함께 밥을 먹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있다.



여우와 두루미


부리는 접시가 싫다.

입은 호리병이 싫다.


여우의 밥상엔 두루미가 없다.

두루미의 밥상엔 여우가 없다.


내 생각만으로 만든 밥상엔 '너'가 없다.


하지만 먼저 자신을 말했다면 어땠을까.

"여우야, 난 부리라서 접시에 있는 건 먹기가 힘들어."

"두루미야, 난 호리병의 음식을 꺼내 먹기가 힘들어"


사람은 다 다르다.

누가 부리를 가진지, 입을 가진지 모른다.


상대의 부리를 모르고 올린 접시는 실수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 만들어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나를 올리기 위해 대화한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고기고기


난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밥상을 우러러 한 점 고기가 없으면 안 된다.

장모님도 날 알기에 나서방 밥상에는 아무리 못해도 계란후라이 두 개는 올라온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말 풀만 가득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이런 밥상을 지속할 수 없다. 하루 이틀이라면 버티겠지만 난 분명 여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고기반찬을 얘기하는 것이 염치 없는 사위일지 모르겠으나 이 시위는 밥상에 함께 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다.


난 처갓집 밥상에 '나'를 올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할 것이다.



채식 vs 육식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가 함께 식사를 한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음식은 자신의 것이다. 이를 상대에게 권할 수는 있다. 허나 상대의 음식을 잘못된 것으로 말하는 순간 그들의 밥상은 엎어질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 되면 서로를 잃는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주의자 앞에 동물의 생명을 논할 때 육식주의자는 식물의 생명을 논할 것이다. 그 둘은 다른 생명을 논하느라 마주하고 있는 생명과의 소중한 시간을 망칠 것이다.


고기를 먹는 그 사람이 잔인하고 야만스럽게 보인다면 함께 할 수 없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면 적어도 고기보다는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


내가 밥상에서 지키고자 하는 그 어떤 신념보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밥상을 지켜야한다.

정말 그 사람이 내일도 식사를 하고 싶을 만큼 소중하다면 말이다.



하나가 되는 것


니가 없는 밥상을 만들지 말라.

내가 없는 밥상을 이해하지 말라.

허나 너의 밥상을 부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함께 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라.


오늘도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당신의 밥상엔 누구를 올리고 있는가.


부디 당신의 밥상에 사랑하는 이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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