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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Feb 02. 2017

빠른 년생의 변명

어렸을 적 친구가 있었습니다.

작은 시골 동네에 같은 또래 남자는 많지 않았고,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자주 놀게 되었습니다.

멋모르고 같이 놀면 친구인 그런 시절이었죠.


그때의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엄마가 학교를 가라니 갔을 뿐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평생을 고민하게 되는 일이 되리라고..

저도 몰래 빠른 년생이 된 것이었죠.



나는 누구인가


초등학교 3학년, 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빠가 군인이라 이사를 자주 했었죠.

낯선 곳에서 다시 적응해야 했지만 나름 괜찮게 지냈어요.

한 두 명 믿고 지낼 친구만 있다면 충분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사 오기 전 지냈던 친구가 같은 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반가운 옛 친구가 온 것이 무슨 문제냐고요.

옛날 친구와 지금 친구가 함께 마주쳤거든요.


옛날 친구는 제 이름을 불렀어요.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 하지만 그래도 서로 반가워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 지금 친구는 옛날 친구에게 화를 막냈죠.

"너 몇 학년이야!"

옛날 친구도 얼었고, 저도 얼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옛날 친구도 오래된 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땐 그러지 못했어요.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요.

전 옛날 친구를 잃었고, 빠른을 증오할 한 사람을 만들었죠.

다시 만난다면 꼭 사과를 해야겠습니다..



호칭의 존중


사실 나이 차이가 확 나면 빠른은 별 의미 없습니다.

80년생이나 90년생은 제가 85든 86이든 차이가 없거든요.

문제는 친구로 관계를 맺느냐, 형 동생으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죠.

그리고 그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는 거고요.


전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반말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관계 말이에요.

아빠, 엄마란 말은 그냥 부르는 호칭일 뿐 친구와 다름없었죠.

제가 반말을 예찬하는 것은 이런 인간관계를 꿈꾸기 때문이에요.


아빠를 부르고, 친형을 부르고 대하는 편함처럼,

그저 형이라는 호칭만 존중해주세요.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삶의 존중


전 85년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86년에 태어났지만 전 85년생으로 살았어요.

그렇다고 당당하게 나이를 얘기하기도 어렵지요.

특히 상대방이 85나 86이라면 구구절절해집니다.

빠른 86이지만 04학번이고 85로 살아서.....


부탁드립니다.

정말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면 제 삶을 존중해주세요.

날 친구라는 위치로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제가 85로 살고 싶은 것은 당신 위에 서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 친구가, 내 살아온 삶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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