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로는 되지 않는 층간소음

by 삐딱한 나선생

우리 집은 9층이다.

예전 아래층에서 올라온 적이 있었다.

본인 집에는 아이들도 없는데 자신의 아랫집에서 자꾸 시끄럽다고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시끄럽다는 공격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억울하다는 마음이셨다.

아무래도 저희 잘못일 수 있으니 내일 7층에 얘기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다음 날 7층에 가서 상황을 얘기해드렸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희 집에서 소리가 들린 것 같아요.

설마 2층 위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겠어요.

하지만 층층 간 소음도 문제가 많고, 8층은 아이들도 없어서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또 소리가 심하게 울리면 저희에게 바로 연락을 주세요.


7층 집도 우리와 같이 두 아이를 키우는 중이었다.

(같이 애를 키우는 입장에 애가 뛴다고 항의하는 게 서운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잘 알겠다고 했다.

그 후 1년이 넘은 지금도 아무 말이 없으니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옆집은 그러지 못했다.



중재와 오지랖


며칠 전, 옆집에서 찾아왔다.

우리 집도 가끔씩 뛰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밑에서 아무 말이 없냐는 것이다.

옆집도 아래층과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바로 옆집인 데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주머니는 이미 감정적이 된 상태라 꼭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데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양쪽 부부끼리 있었지만 아랫집은 할머니까지 있어 치우친 구도였다.

아내와 아이를 돌려보내고 중재인지 오지랖인지 모를 시작을 했다.

그중 제일 어린 3자의 개입이었다.



이해와 배려


이미 아주머니들은 대화가 아닌 싸움이었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할머니의 퍼붓는 공격은 랩 배틀을 연상케 했다.

결국 아래층 아주머니는 약간의 막말을 남기고 들어가 버렸다.


"아무래도 층간소음 자체의 문제보다 안사람들끼리 감정이 상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 같습니다.

우선은 남편분들께서 말씀을 나누시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좀 나오면 그때 안사람들께 얘기하고 이해시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후 양쪽 남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훨씬 차분한 대화였지만 크게 진전이 없었다.

윗집 아주머니와 아랫집 할머니가 말을 이어가면 대화는 감정적이 되었다.

서로 불편했던 내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등에 업고 나왔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하면 이래요.

아랫집에서는 윗집이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또, 윗집은 아랫집이 좀 더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고요.

그러다 보니 윗집은 배려심 없는 사람이 된 거고, 아랫집은 이해심 없는 사람이 된 거예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두 분 다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윗집 여: 뭐 그렇죠. 위아래로 안 만났으면 잘 지낼 사이죠.

아랫집 여: 두 집 다 입주할 때부터 살아서 10년도 더 살았지만 애 키우기 전까진 문제없었어요.


"그러니까요.

부부싸움이 생기는 것도 애 때문인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은 정말 힘들어서 서로의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인 거죠.

아랫집이 아이가 아팠기 때문에 윗집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윗집은 아이가 셋이라 아무리 말려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요.

저는 다행히 아랫집이 애를 다 키운 상태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지만 두 집은 양쪽 다 이해가 필요한 거예요."



대화와 존중


"서로 이해하고 살자는 원론적인 말로는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윗집을 이해하자면 자고 싶어 하는 아이를 이해해줄 수 없어요.

아랫집을 이해하면 뛰고 싶어 하는 아이를 묶어놔야 하죠.

정말 구체적인 대화와 실제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랫집 남: 다음 주면 둘째도 어린이집을 다시 갑니다. 그때까지 한 주만 2시~5시까지 낮잠을 집에서 잘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윗집 여: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죠.

아랫집 남: 정말 많이 바라는 건 아니고 조금만 더 배려해주시고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얘기가 아랫집은 윗집의 더 큰 노력을 바라고, 윗집은 아랫집의 더 큰 이해를 바라는 거예요.

하지만 반대로 지금까지 윗집은 둘도 아니고 셋을 키우면서 얼마나 조심시키려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또 아랫집은 그 어쩔 수 없는 소리를 얼마나 참았을지 서로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서로의 처지와 노력을 존중하면 다음엔 훨씬 부드러운 대화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랫집 할머니: 정말 아파트 너무 소리가 잘 들리긴 해.

윗집 남: 그러니까요. 예전엔 안 들리던 소리도 더 들려요.


남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윗집 아주머니는 울고 할머니는 안아주었다.

마지막은 그래도 훈훈한 모습이었다.


층간소음 문제는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이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해도, 난 그 아이였다.

아파트라는 불편한 공간에 같이 있지만 믿고 대화할 수 있다면 서로의 숨통을 좀 트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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