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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놓은 게 입에서 될 리 없다

by 삐딱한 나선생

얼마 전, 아내와 딸 둘과 복합쇼핑몰을 갔다.

그 안에는 딸들이 좋아하는 뽀OO 키즈카페가 있었다.

첫째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입구로 달려 날아갔다.


아내는 첫째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손의 물리력도 이겨낸 아이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먹힐 리 없다.



놓쳐버린 것


첫째는 흥이 정말 많다.

차에서도 노래만 나오면 들썩들썩한다.

허나 흥분한 상태로 아이는 주차장에서 달려 나갔다.

다행히 움직이는 차는 없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힘들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손을 놓아버렸다.

손으로는 잡지 못해 입으로만 불렀다.


넘어지는 정도라면 손을 놓아줄 수도 있다.

가파른 길이라 구를 것 같다면 손을 꼭 잡아야 한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주차장이라면 손을 절대 놓을 수 없다.


손을 왜 잡고 있는가.

넘어질까 봐, 위험한대로 갈까 봐.

그렇다. 첫째는 안전, 생존의 문제이다.

내 손이 너의 안전벨트요, 생명줄인 것이다.



잡는다는 것


"애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잘 잡고 다닌다."


최근 들었던 말이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밖에선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계단이고, 언덕이고, 기다릴 때 고 놓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둘째는 물고기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간다.

난 위험한 장소에선 손을 놓지 않는다.

그냥 같이 물고기를 보러 갈 뿐이다.


뽀OO 키즈카페도 마찬가지였다.

난 손을 잡으라고 했다.

아이를 묶어 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아내가 표를 사는 동안 난 첫째가 원하는 곳으로 손을 잡고 다녔다.


내 손이 안전벨트라고 했다.

안전벨트는 운전의 기본일 뿐이다.

오늘도 내 아이는 내 손을 장착하고 운전한다.



믿는다는 것


아이는 내 손을 믿는다.

아빠 손을 잡으면 안 넘어진다는 걸.

가파른 계단도 껑충껑충 걸을 수 있다는 걸.


아이는 나를 믿는다.

아빠가 자기를 붙잡아두는 게 아닌 걸.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 거라는 걸.


둘째는 꽃을 좋아한다.

꽃이 핀 곳에 아이는 멈췄다.

나는 가야 한다.

아이는 내 손에 끌려 따라온다.


내가 이끈 길에도 꽃이 있다.

꽃이 없어도 좋다.

내가 이끄는 곳에 행복이 있음을 안다.

우리가 함께 가는 모든 길에 꽃이 핀다.



놓아주어야 할 때


난 지금 너의 손을 잡고 있다.

너의 체온을 느끼고 싶고, 함께 걷고 싶다.

하지만 머지않은 시점에 난 너의 손을 놓아야 한다.


부디 안전한 곳이길 바란다.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을 때이길 바란다.

내 손을 놓고 원하는 곳을 마음껏 날아가길 바란다.


손 잡기가 어색할 만큼 네가 컸을 때.

그때도 우린 연결된 관계일 거라고 난 믿는다.

우리의 손과 손의 연결이 말과 말의 연결로 바뀔 뿐.


손을 놓아도 마음은 놓지 않을 것이다.

너의 마음속에 난 '부모 자아'로 남아 있을 테니.

어릴 적 너의 손을 잡고 함께 했듯, 언제나 너의 삶 속에 남아.

너를 구속하는 손이 아닌 너를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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