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테이블에서 연인이 싸우고 있었다.
"난 자기가 친구랑 놀러 가고 하는 거 이해해 주는데 자긴 왜 그래?"
"내가 언제 그런 걸 바랬어? 그럼 나도 안 놀러 갈게!"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이야기일 것이다.
난 둘을 자세히 모르니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다.
하지만 이해를 그렇게 쓰는 데에는 찝찝함이 있다.
나의 이해
저 위의 빨간 글씨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저런 말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이해하고 있으니, 너도 이해하란 말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의 이해를 바란다.
연애의 목적은 둘의 만남이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라는 노래 제목처럼.
날 멀리하는 너까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둘만의 관계로만 살 수는 없다.
서로 각자의 삶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은 분명 있다.
다만 내가 놀러 가고 싶은 걸 이해라고 말하진 않길 바란다.
내가 하고 있는 이해에 상대방이 들어있지 않다.
나만의 생각으로 하는 이해는 강요다.
내가 앉으려고 말하는 양보처럼.
나를 너에게
애들은 정말 그런다.
"형이면 양보를 해야지!"
자기가 앉고 싶다는 이기심을 더 높은 도덕적 가치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더 지저분하다.
차라리 "형. 나도 좀 앉자~!" 이게 낫다.
나를 직접 전하는 것엔 너에 대한 비난이 없다.
여자가 그냥 친구랑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상대를 이해심 없는 쪼잔한 놈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남자는 거절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대화의 시작이 위와 같으리라.
이해는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알지 못했기에.
너를 이해
우린 알고 있던 것을 이해했다 하지 않는다.
모르는 걸 이해하려니 머리가 아픈 거다.
허나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상대가 알려주지 않으면.
이해하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가르치고 확인하고, 또 가르쳐야 겨우 알아간다.
이해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이해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 하는 사랑은 없다.
사랑하기에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이해시키려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