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믿지 말란 말을 믿어줘

by 삐딱한 나선생

옆 테이블에서 연인이 계속 싸웠다.

처음엔 개인 사생활, 이해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믿음의 문제였다.



알 수 없는 믿음


"자기가 전에도 말 안 하고 클럽 간 적 있잖아요."
"옛날 얘기 꺼내지 마요. 이번엔 진짜 친구들하고 놀러 가는 거예요."

남자는 여자를 보내주지 않았다.
여자는 자기의 사생활을 요구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믿음을 요구했다.


넌 친구와 여행을 간다는데 난 무슨 여행인지 모른다.

너의 폰에는 문자가 왔는데 난 비번을 모른다.

너의 행동엔 이유가 있는데, 난 모른다.

너는 나에게 널 주지 않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알려고 하지 말고 믿으라고.

사랑은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는 거라고.


그럼 당신은 그렇게 가려진 채 살아도 좋은가.

내용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보는 시험처럼.

최소한의 정보 제공도 없는 국정운영처럼.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너의 사랑처럼.



볼 수 있는 믿음


꼭 정치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를 숨기려 할 때 비겁해진다.

드러내지 못하는 나보다, 의심하는 널 욕한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믿음을 강요하면 더 큰 의심을 산다.


여자는 이전에 사건이 있었다.

남자의 믿음은 깨졌지만 변화가 없다.

컵을 깬 아이에게 다시 유리컵을 주진 않는다.

한 번 바람피운 상대의 말을 다신 믿긴 어려운 일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보여주는 노력이었으리라.

누구와 가는지, 일정이 무엇인지, 당신의 믿음이 생기도록 연락하고 알려주는 것.

100번을 쌓아도 1번에 무너지는 게 믿음이다.

1번을 실망시키면 100번을 쌓아야 믿을까 말 까다.


사랑의 시작에는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

믿을 수도 없는데 이해할 수는 없다.

믿음 없는 이해는 무관심이다.

사랑은 알아가는 것이고, 알게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믿음


난 아내에게 항상 말한다.

절대 날 믿지 말라고.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기에.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확인하라고.


너와의 처음부터 난 나를 열어 보였다.
내 일정을 네가 모르게 한 적이 없다.
핸드폰 비번은 남을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너는 남이 아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라, 나를 경계해 달라고 너에게 부탁했다.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영원한 믿음이 아니다.

나를 너에게 보여주겠다는 끝없는 노력이다.

내가 나를 감추려 한다면 믿음은 거짓이다.


이해는 관심에 있고, 믿음은 의심에 있다.

의심을 막는 것은 부패의 첫 번째 길이다.
믿음은 믿으라는 말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수많은 경험으로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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