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외로움

by 삐딱한 나선생

소신과 외로움은 서로 뗄 수 없는 것 같다.

소신을 지키려다 외로워지기도 하고,

외로워서 소신을 잃기도 한다.



초딩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서 가져온다.

정말 비슷한 패턴으로 많이들 틀렸다.

그중 맞는 아이도 있다.

근데 틀린 답도 많으면 정답처럼 보인다.


정답을 쓴 아이들이 소수면 기가 눌린다.

자기가 맞는 답을 쓰고도 당황한다.

물론 틀린 답을 들고 끝까지 우겨대는 아이도 간혹 있지만..


내 주변에 지지자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위축된다.

더더욱 아이들은 확실한 근거나 자기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선생님의 판정이 있은 뒤에야 안도한다.



고딩


고등학교에선 토론 수업도 가끔 했다.

내 머릿속에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내 주장이, 내 근거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돌고, 심장은 벌렁거렸지만, 입은 다물었다.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 주변엔 친구가 없었다.

착한 친구들은 얼마 남지 않았고,

센척하는 놈들이나, 그에 붙는 애들이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나 선생님에게 의존하던 시기는 지났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우정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다짐하고 다짐했다.

다신 움츠러들지 않겠다.

휘어져 꺾여버려느니 차라리 부러지겠다.

부러져 날카로워지겠다.



어른


쪼끄만한 놈이 나름 날카롭게 굴기도 했다.

선배에게 대들고, 윗사람과도 싸워봤다.

이젠 좀 더 부드러워질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되어 가는가 보다.


난 요즘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말로 깨지던 걸, 글로 완성하니 더 그런 것 같다.

말로 하던 걸 글로 적으니, 말이 더 분명하고 강해졌다.

이런 할 말 하는 모습이 어떨 땐 재수 없이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 자신을 재수 없게 여기던 때보단 낫다.

지금의 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소신을 지키고, 외로움을 견뎌냈다.

더욱이 지금은 외롭지 않다.


거울에 흰머리 한 가닥이 삐죽이 보인다.

누군가는 이걸 뽑아주려 하겠지만 난 흰머리가 좋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남아있는 검은 머리가 예뻐 보일 것이다.


내 편이 적다고 기죽지 말자.

너 하나라서 눈에 띈다.

특별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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