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이유가 필요한가

by 삐딱한 나선생

중학생 시절.

아침 버스를 놓치면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뭐라고 둘러대야 조금은 덜 혼날 수 있을까.



변명


늦은 이유는 수도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배가 아팠다고 할까, 엄마 때문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때의 더러웠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에게 혼나는 게 그리도 두려워 떨리던 심장이.

뭐라도 핑곗거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비굴하게 읍소해야 했던 내 처지가.


물론 내가 여리고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각했으면 혼나는 게 당연한 것도 맞다.

그러나 그런 변명 따위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잊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상황은 계속 있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가 되는듯한 느낌.

난 왜 아직도 변명을 준비하며 살고 있을까.



설명


상사에게 업무의 힘든 점을 이야기한다.

상황이 어떻고, 문제점이 이런저런 것들이 있다고.

문제는 상사가 내 말을 들어주느냐 마느냐다.


남편은 그 술자리가 정말 중요함을 말한다.

아내는 그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한다.

내 설명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당신의 설득에 있다.


분명 설명은 필요하다.

변명보단 훨씬 건강한 일이다.

그 말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길이 된다.


그러나 설명이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꼭 사탕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누구에게 허락받는단 말인가.



천명


멋대로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 삶을 변명하진 않겠다.

도망가는 나약함이 아니라 인정하고 고쳐나갈 것이다.


내 삶을 설명하지 않겠다.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 삶은 이것이다 당당히 말하고 싶다.


하나, 구속된 존재로선 당당할 수 없다.

부모에게 매달리는 아이처럼, 결재를 받아야 하는 부하처럼.

오직 홀로 설 수 있을 때, 당신의 삶을 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하는 모두가 그러하길 바란다.

직급을 떠나 서로의 좋고 싫음을 나눌 수 있기를.

겉도는 설명은 버리고, 당신의 감정과 직접 대화하기를.


내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해주어 고맙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려주진 않는다.


그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함을.

그 마음의 깊이를 나에게 알려다오.

난 당신에게 이유 없는 삶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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