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로서 좋은 환경을 주려고 노력한다.
2. 좋고 싫음은 아이의 선택이다.
3. 위험을 함께 해주자.
난 딱딱한 바닥과 뾰족한 모서리를 겪어보길 바란다.
바닥에 넘어지고, 모서리에 긁히라는 말은 아니다.
그곳에서 성장하길 바란다.
위험 속에서
집에 선풍기가 있다.
20개월짜리 아기도 있다.
위험하니까 치우라고들 말한다.
난 위험하니까 가르쳐야겠다.
선풍기가 없으면 아이가 손가락 다칠 일은 없다.
하지만 선풍기가 있어야만 선풍기가 위험한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선풍기에 손이 베이도록 두라는 것은 아니다.
덮개 정도는 씌우고, 위험을 인지하도록 계속 교육하란 말이다.
위험을 없애버리는 건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선풍기만 보면 달려든다.
교육되지 않은 것은 반복된다.
오직 가르친 위험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위험 속으로
아무리 내가 부드러운 환경을 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아이는 클수록 나의 통제를 벗어날 것이다.
손을 잡고 도로를 건너는 시기는 고작해야 유년까지다.
술과 담배는 편의점만 가도 널리고 널렸다.
아이는 클수록 위험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당신은 아이가 어떤 상태이길 바라는가.
선풍기를 몰라 호기심을 보일지.
선풍기의 주의점을 알고 사용할지.
물론 선풍기는 우스워보일 것이다.
조금만 지나면 별 위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험한 친구, 장소는 어떤가?
이성문제, 스마트폰, 학업 등은 어떻게 하겠는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위험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당신의 목표는 환경을 키우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것인가.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하겠다고 친구를 골라 붙여주겠는가.
좋은 친구를 볼 줄 아는,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겠는가.
위험이 왔을 때
바닷가에 조경용 돌이 있다.
우리 애들은 그 위를 걷고 싶어 한다.
돌 높이가 다르고 벌어져 있어 위험하다.
지금은 내 손을 잡고 있으니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조만간 그 위를 혼자 걸을 것이다.
놓아주기 위해 새를 키우듯.
너는 크면 클수록 내 손을 놓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의 경험이 아이에게 남으리라 믿는다.
눈으로 본 돌 사이의 거리.
다리를 뻗었던 몸의 감각.
떨어질 뻔했을 때의 두려움.
내 손이 있었을 때의 안정감을.
너의 환경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내가 너의 곁을 계속 지켜줄 수는 없다.
그래도, 너의 삶에 위기가 오더라도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넘어지더라도 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