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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or 딱딱하게(1)

by 삐딱한 나선생

부드러운 환경에서 자라게 할 것인가.

딱딱한 바닥, 뾰족한 모서리를 겪게 할 것인가.

토론의 주제였다.


그 자리에선 대부분이 부드러운 환경을 선택했다.

난 아이가 겪어 내길 바랬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전제조건


'부드러운 환경' 측은 부드럽다는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즉, 사랑, 안정감 등 긍정적인 감정이란 것이다.

반대로 '딱딱한 환경'은 학대, 위험 등 부정적 감정으로 표현했다.


난 여기에 전제조건을 말했다.

부드러운 환경이 아무것도 없는 무균실 같은 조건을 말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딱딱한 환경이 생명에 치명적인 조건을 주는 건 아니다.


올가미 같은 애정이나 무책임한 방임을 배제한다.

우린 좋은 부모, 나쁜 부모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이라는 변인을 논하기 위해서는 '부모' 변인은 통제해야 한다.

양 극단의 나쁜 부모는 토론의 가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좋은 부모라는 전제를 한다.

적어도 그렇게 되려는 노력을 조건으로 시작한다.

그래야만 환경이 좋은 목적을 가지고 활용되는 것이다.

당신은 좋은 부모로서 부드러운 환경을 줄 것인가, 딱딱한 환경을 줄 것인가.



선택의 주체


당신을 아무리 좋은 부모로 전제해도 잘못될 수 있다.

당신이 주체이고, 아이는 대상으로 볼 때이다.

당신이 주고 싶은 환경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건 아이의 몫이다.


[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에서 주인공은 모험을 떠난다.

어른이 볼 때의 부드럽고 안정적인 환경을 스스로 벗어난다.

어쩌면 아이는 갑갑한 부드러움보다 날카로운 자유를 원했는지도.


아이가 무엇을 좋아할지, 우린 정해줄 수 없다.

부드러운 인형을 좋아할지, 작고 위험한 단추를 좋아할지.

뛰기 싫어하고 걷기만 하는 아이는 위험도 적다.

그래서 딸이 아들보다 수월한지 모른다.


우리가 부드러운 환경을 주고 싶은 건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뛰고 싶은 아이를 묶어두는 건 고문이다.

아이가 안전하게 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진정 부드러운 환경이라 생각한다.



어른의 자세


물론 딱딱한 환경에선 부모도 긴장해야 한다.

손도 많이 가고 내 여유도 없다.

꼭 내가 바쁠 때 사고가 난다.

내가 지켜주지 못할 땐 위험 앞에 두지 말아야 한다.

https://brunch.co.kr/@darkarkorn8cnl/331


그래도 가능한 한 도와줬으면 좋겠다.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에 믿을 건 당신뿐이지 않은가.

아이의 호기심과 모험심은 어른의 귀찮음과 두려움에 꺾였는지 모른다.


아이는 돌 위를 걷고 싶어 한다.

난 아이의 마음을 꺾고 싶지 않다.

위험하다고 돌을 치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면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선택을 어떻게 안전하게 지켜줄 것인가.

어떻게 안 넘어지고, 뛸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입에 안 넣고, 단추를 갖고 놀 수 있을까.

부드러운 내 손과 눈으로, 너의 위험 앞에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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