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맞아서 틀렸다

by 삐딱한 나선생
섬에서 온 나그네와 산골에서 온 나그네가 도시에 와서 서로 말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신 소린가? 해는 바다에서 뜨는 것이네!"
해가 왜 바다에서 뜨는가? 산에서 뜨지!"
"아, 이 양반아. 내가 매일 두 눈으로 본 걸 모를까 봐!"
"허, 이 사람아. 내 눈은 눈이 아닌가?"

-짧은 이야기, 긴 생각 중-


지금 우리의 눈엔 바보 같은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원리를 배워서 아니까.

하지만 누구나 바보일 때가 있다.



기억의 차이


어릴 적, 형과 난 많이 싸웠다.

과자, 게임 때문에, 정말 유치한 싸움이 많았다.

그중 가장 답 없이 싸운 건 누구 말이 맞고 틀리고였다.


단어 하나 가지고, 기억 하나 가지고 물고 늘어졌다.

이 뜻이 맞다느니, 내가 어디서 봤다느니.

결국엔 인신공격이 되어 마음만 상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런 어리석은 싸움을 끝내기로 했다.

당장의 주장보다,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던걸.

이젠 검색만 하면 될 것을 왜 고집했을까.


그러나 싸움을 멈출 수 있었던 건 내가 이겼기 때문이 아니다.

내 기억이, 주장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부터다.

내가 맞다는 확신이 싸움의 이유란 걸 이제는 안다.



삶의 차이


도시의 여자와 시골 남자가 만났다.

둘은 사랑했고 같이 살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은 많이 달랐다.


"남자가 당연히 집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맞벌이인데 당연히 집안일은 똑같이 해야지.

친구는 남편이 애 본다고 혼자 필라테스 받더라."


"부모님도 돈이 별로 없다고 했잖아.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도와주는 거지.
당신 친구들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는 말이 무섭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바뀌지 않는다.

평생 다른 해를 보고 자라온 그들이기에.



우리의 차이


'집안일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인가.

바깥 일과의 형평에 따라 합리적으로 나눌 수도 있다.

계급사회에선 노예, 자본주의 사회에선 가정부로 대체할 수 있다.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예전엔 아니었다.

여기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저기선 아니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남편들은 애를 몇 시간 본다더라."하면 공격이다.

"나 좀 쉬게 당신이 몇 시간 봐줘."하면 요청이다.

남들이 해서가 아닌, 우리의 필요를 대화하자.


우리의 차이는 타고난 조건인 것이 많다.

그러나 그 차이를 극복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남들이 만든 당연한 것이 아닌, 우리에게 맞는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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