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내 것이 아닌

by 삐딱한 나선생

아무 느낌 없이 현관문을 연다.

아무 느낌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에는 그리 좋았던 내 집, 새 차였는데.



없던 것


예전에 카페에서 조각 케익을 시켰다.

아내는 정말 감동한 눈빛이었다.

평소엔 사주던 놈이 아니니까.


"엄마 아빠 사랑해~ 진짜 고맙다~~"

처음 아이스크림을 사줬을 때, 첫째는 정말 좋아했다.

그러나 이젠 빨리 내놓으라는 식의 말도 자주 뱉는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했던가.

케익을 매일 시켜도, 아이스크림이 앞에 있어도 기쁘지 않다.

처음의 고마움도 당연해지면 사라져 간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런 무한 긍정의 얘긴 못하겠다.

다만 내게 없었던 것만이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다.



너의 것


마술을 보면 꼭 트릭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지나치게 파고드는 사람.

마술사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관객이다.


남편이 요리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아내는 어떤가.

아내의 운전실력을 뭐라 하는 남편은 대신하고 있는 아내를 못 본다.

마술을 뜯어보는 사람은 마술사의 노력에 박수치지 않는다.


여행 짐을 싸는 건 거의 아내가 한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나에게 도와주라 했지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주면서도 간섭하고 잔소리하기에 싸운다.


같이 해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때론 각자의 영역으로 두는 게 아름다울 때도 있다.

아내는 원하는 방식으로 짐을 싸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편하게 탄다.

내가 하지 않은 너의 것이기에 고마워할 수 있다.



당연한 것


곁에 있는 당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

처음 가졌던 설렘, 혹은 떠날 것 같은 두려움.

내게 없을 때를 떠올리는 것만이 당신이 내게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


모두 내 것이라는 욕심이 감사를 잃게 만든다.

존중하지 않는 너의 것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당연하게 채워진 내 삶은 더 담을 공간이 없다.


애를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당연하게 받아왔던 모든 것들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걸.

지금도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의 당연한 움직임들이 정말 고마운 것임을.


내 것이 아니기에 선물 받을 수 있었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기에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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