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너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라고 한다.
타인의 과제를 지나치게 나의 것으로 여겨 생기는 문제가 있기에.
하지만 교사가 학생의 과제를 타인의 것으로 여기는 건 쉽지 않다.
너의 과제
수업 중에 딴짓하는 애들은 꼭 있다.
책에는 별을 그리고, 지우개는 똥을 만든다.
공부하라고 사준 학용품일 텐데, 아주 좋은 장난감이 된다.
만약 수업 듣는 것을 학생의 과제로만 생각한다면.
굳이 화를 낼 필요도, 신경 써서 바로 잡을 필요도 없다.
그냥 옆집 아이처럼, 성인이 된 대학생처럼 두고 볼 뿐이다.
'공부 안 하면 지만 손해지.'
이렇게 생각하면 속 편할 텐데.
교사로서의 책무는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본업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좀 내려 놓으라는 동료 선생님의 얘기가 맞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난 너의 과제를 나의 것이라 느끼기에 애쓰고 있다.
나의 과제
초임 때, 난 내가 수업을 잘한다 생각했다.
안 듣고 있으면 보게 했고, 딴짓을 하면 못하게 했다.
학생을 잡는 일은 자신 있었고, 난 내 수업을 하면 됐다.
그러나 해가 가면서 야단치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얘가 딴짓을 하는 게 나 때문은 아닐까.
내가 좀 더 재밌게 수업하면 더 집중하지 않을까.'
처음에 딴짓은 온전히 학생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점차 학생의 딴짓에 나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너의 과제는 혼낼 수 있었지만, 나의 과제가 되었을 땐 괴로워졌다.
물론 여전히 학생의 수업태도를 잡으려 노력한다.
대신 나 또한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다.
아마 평생 이 사이에서 버둥대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과제
딴짓하지 않고 선생님만 쳐다보는 학생들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학생을 몰입시키는 교사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래도 같이 살아가야 한다.
내가 만난 넌 아직 초등학생인걸.
중학교, 고등학교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겠지.
또 어른이 되어 딴짓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그런 일을 찾는다면.
난 아직 딴짓하는 학생을 보며 화가 나고, 괴로워 하지만.
나도 연구하고 발전해서, 딴짓하는 학생을 조금은 줄일 수 있기를.
아니, 줄이지는 못해도 딴짓하는 학생을 보듬어주는 여유가 생기기를.
내가 언제까지라도 학생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이기를.
학생은 언젠가는 삶을 스스로의 과제로 인식하기를.
우린 각자의 과제를 함께 풀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