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흘러간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깨닫는 것뿐.
갖지 않음
"넌 결혼하지 마라.
그냥 편하게 혼자 사는 게 낫다."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더 보기 힘든 것 같다.
내가 사랑해서 함께 하기로 한 사람임에도 구속으로 여긴다.
내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임에도 버겁게 느낀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크게 보이는 걸까.
내가 선택한 배우자보다 나았던, 나을 수 있었던 대상을 떠올린다.
아이가 주는 행복보다 그로 인해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한다.
갖지 못한 것의 가치에 지금의 것을 잊어버리는지 모른다.
결혼의 안정을 원하는 동시에 연애의 자유로움을 원하는.
아이를 갖고는 싶어 하면서 내가 할 건 다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자기모순적인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기를.
남지 않음
물론 한 사람을 만나 맞춰가고, 아이를 보듬어 키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행복한 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발언인 것도 안다.
또 현재가 괴로워 불평하는 마음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30대 친구들은 술 한잔, 운동, 나가지 못한다고 억울해한다.
40대 형들은 아이들이 아예 아빠는 없는 존재로 여겨 소외감을 느낀단다.
아이를 키울 때 자유를 원하고 아이가 떠날 때 그리워할 거라면.
그러면 내 삶은 불평밖에 남는 게 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 고민을 반대로 바꿀 수만 있다면.
예전 '난 두 여자와 샤워한다'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도 못 가누다 일어서기만 해도 씻기기 편하다고.
하지만 내가 씻겨줄 필요가 없어졌을 때, 내 육아 또한 끝날 거라고.
그때의 나
난 고통을 겪어내면 행복이 올 거란 막연한 희망의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괴로운 모든 순간들을 미화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그 어떤 시간들은 우리 삶에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는다.
예전 박카스 cf가 생각난다.
사표 쓴다는 직장인을 보며 취준생은 "부럽다. 취업을 해야 사표라도 쓰지."
그 취준생을 보며 이등병은 "부럽다. 누워서 TV도 보고."
이를 보는 직장인은 다시 "부럽다. 저땐 그래도 제대만 하면 끝이었는데."
사실 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0.00000001도 없다.
다시 수능을 보고, 임용고사를 치르는 과거 따위 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 시기에 충실했기에 지금의 행복한 내가 되었다.
난 젊어서는 나이 든 사람의 돈을 부러워하고, 나이 들어서 젊음을 부러워하고 싶진 않다.
'아이를 키울 때 그리워하고, 아이가 떠날 때 자유를 원하기를.'
그때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는 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