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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가 싫어 나이를 묻는다

by 삐딱한 나선생

누군가 그랬다.

넌 뭐 그리 나이를 따지냐고.

"아! 그럼 너라고 불러도 돼요? ㅋ"



사회적 관계


우리나라는 나이가 참 중요하다.

일상적 관계의 대부분은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린이집, 유치원만 가도 위아래를 따진다.


물론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

학생 시절엔 내 동의 없이 반말을 해도 어쩔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되면 20살부터 100살까지 서로 존대해야 할 동등한 입장이니.


요즘은 회사에서 대리도, 사장도 ~~님으로 부르라고 한단다.

학교도 공식적으론 ~~선생님, 주무관님 직급을 부른다.

어차피 피차 선생님으로 지낼 거면 나이는 필요 없다.


편의점에 들어가 계산하면서 서로 존칭을 쓴다.

나이가 누가 많은지 적은 지, 그런 걸 묻는 정신병자는 없다.

그러니까, 딱 사회적 관계로만 지낼 거면 나이 따위는 잊어도 상관없다.



한국적 관계


내가 굳이 학교 밖이면, 아이들이 없으면 형, 누나를 쓰려는 이유.

내가 '선생'이라는 직장인으로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내가 당신을 직장 동료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직장 동료라면 그냥 자기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일이 잘 돌아가고, 서로 피해되지 않도록 하는 정도면 말이다.

그의 삶이 어떠한지, 그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러나 난 일을 넘어선 인간적 관계가 되고 싶다.


물론 이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은 인간도 세상엔 많다.

관계를 맺고 싶은 누군가는 저 옆 부서에 있는 경우도.


그러니까 그 작은 확률을 뚫고 형, 동생 하는 관계가 있다는 건 축복인 거다.

각박하고 답답한 사회생활에 편하게 터 놓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

"따거!~" 동양의 문화 안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가.



평등적 관계


우리 학교에 원어민이 온다.

처음엔 나와 손을 흔들어 인사했는데.

얼마 지나니 나한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Oh! No. Just say hello to me."

아무리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른다지만 슬펐다.

난 한국말을 하지만 모두와 손을 흔들고 싶은 사람인데..


내가 영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영어가 편한 순간들이 있다.

나이를 물을 필요도, 상하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기에.

영어권에 살았다면, 굳이 귀찮게 나이를 물을 필요도 없었을 것을..


그렇다고 마냥 서유럽, 다른 나라 문화를 부러워만 하고 싶지도 않다.

다시 태어날 상상은 헛되고, 이민의 꿈은 꾸어본 적 없다.

난 현재, 이 나라에서 평등을 이루고 살련다.


교장, 장학사라는 직급을 넘어 형, 동생을 허락해주는 사람들.

그 어떤 호칭을 넘어 나를 당신과 동등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애초에 위아래가 없는 서양권에 살았다면 찾지 못했을지도.

위계를 넘어 날 평등하게 대해주는 그 소중한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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