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그 좋음의 기준은 취미일 수도, 생각일 수도, 성별일 수도 있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만 함께 하다 보면 위험해진다.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은 갈수록 보수화 된다.
정치가 무서운 건 그 때문이다.
볼링 동호회에 가면 볼링이 최고라 하고, 배드민턴에 가면 배드민턴이 최고란다.
모든 운동이 나름의 재미를 담고 있지만, 그 운동만 옳다 하면 그르다.
일상의 삶에도 고인물이 썩어가듯, 정치화되는 모습은 없는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싫은 사람을 욕하는 말이 다라면.
교회에 나가 신께 기도 올리며 다른 신을 욕하고 있다면.
혹시 내 좋음은 타인에 대한 싫음을 전제하진 않는가?
싫어
연휴엔 부모님 댁에 가서 아빠와 한 잔씩 했었다.
그러다 '진짜 다신 내가 아빠랑 술 먹나 보자'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냥 같이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하나, 채식주의자를 앞에 두고 고기 먹긴 어렵다.
나빠
인간 이하의 비도덕적인 내용은 말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내 짧은 생의 배움으론 가치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었다.
어릴 적엔 교회 다니는 친구와 깊게도 싸워봤다.
결국 감정만 소모될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소중한 친구만 잃을 뻔했다.
그의 삶은 나의 삶과 달랐다.
그의 아빠는 목사였고, 집은 교회였다.
삶의 기반을 성경에 둔 사람과 과학으로 논쟁하면 안 되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선 나를 교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꽤나 오래 친구일 수 있었다.
TV에선 교황과 스님이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단지 일시적 만남이 아닌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책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통해 인류를 통합할 수 있었다는데.
어쩌면 우리는 공통분모를 찾지 못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