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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대로 살게요

by 삐딱한 나선생

사람들은 가진 게 다르다.

실력도 돈도 능력도.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다.



운동


난 멘탈스포츠를 좋아한다.

볼링, 당구, 골프 같이 체력보다는 정신력을 요하는 운동.

키도 작고 오래 뛰지도 못하는 내가 그나마 저런 종목은 할만했다.


위의 운동이 꼭 몸을 덜 써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배드민턴, 농구, 축구 이런 것들은 실력 차이가 나면 게임이 안 된다.

조금의 실력 차이도 큰 점수 차이가 됐고, 아래에선 농락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볼링, 당구 이런 것들은 다 내 아내와 했던 운동들이다.

내가 먼저 접하고 아내를 끌어들인 경우가 많았기에 내 실력이 좀 나았다.

그러면 각자 점수대로, 그 차이만큼을 핸디로 잡고 내기도 하고 했다.


부부 사이에 공통된 취미를 갖는 건 중요하다.

영화나 산책에 비해 운동을 맞추기엔 기호와 능력의 차이가 꽤 크다.

그러나 그 차이조차 게임의 한 요소로 넣을 수 있다면 무언들 함께하지 못하랴.



주량


대학교 때 선배가 준 술을 거부한 적이 있다.

맥주 500 한 잔을 시켜놓고 원샷하란다.

그 술엔 자기가 더 세다는(술도 권력도) 메시지만 들어있었다.

술을 이겨먹으려고 먹는 사람을 좋아할 순 없다.


때론 나도 술을 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술을 '잘 먹는다'는 개념이 바뀐다.

먹을 때 신나게 먹고, 추태는 부리지 말고, 다음 날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게.


10병을 먹어도 행패 부리고, 다음 날 널브러져 있는다면 그게 뭐 센 건가.

1병을 먹어도 그 자리를 즐길 줄 알고, 앞에 있는 상대에게 진심을 다 한다면.

만원을 갖고 으스대던 부잣집 싸가지보다, 500원으로 나랑 나눠먹던 옛 친구처럼.


난 당신과 함께 취하고 싶다.

몽롱한 취기를, 섞여 녹아내림을 나누고 싶다.

주량이 소주 2병이면 2병으로, 맥주 한 잔이면 한 잔으로.

비겁하지 않은, 속이지 않은, 각자가 가진 전부를 털어서.



함께


"아~ 형, 지금은 그냥 얻어먹어요."

임용고사가 늦게 돼서 돈이 별로 없었던 형.

우리나라에 있는 암묵적인 나이 룰에, 동생들과 술 한잔 하기도 부담스러웠다고.

"형~ 누가 내면 어때요. 나중에 형이 벌어서 많이 내면 되지 ㅋㅋ"


돈이 더 있다는 우월감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얻어먹는다는 초라함이 아니라.

누가 내더라도, 함께하려는 그 마음으로.


뭐든 날로 먹으려는 사람한텐 주고 싶지도 않지만.

가진 게 많건 적건 같이 나눌 줄 아는 사람에게는.

나 또한 내 가진 모든 걸 내어줄 수밖에.


친구든 부부든, 그 사이의 수치적 차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누가 더 잘났든, 돈을 더 벌든 서로를 채우려 한다면.

그 무엇이든 비율을 조정하고 균형을 맞춰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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