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아이들

by 삐딱한 나선생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정말 선생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애들이 있다.

그런데.. 내 머리 꼭대기는 어디에 있지?



관심종자


학급에 한 둘은 껴 있는, 관심이 필요한 아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핀을 꼽고, 줄로 묶고.

삐삐가 되기도, 사무라이가 되기도.


쉬는 시간에만 그러고 논다면 말도 안 하지.

적당히 친구들하고 놀만큼 하고 빼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급식실을 가고, 전담을 가도, 동생들이 놀려도 저러고 있네.


"하지 마라. 수업 분위기 흐린다."

내가 말리지 않으면 점점 더 심해지니까.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은데, 신경이 쓰이는 내가 싫어서.


어떻게 보면 악의적이진 않은데.

어느 정도는 개인의 자유일 수 있는데.

얘는 얼마만큼을 허용해줘야 내 범위 안에 있을까.



만화책


"선생님~ 학교에서 만화책 읽어도 돼요?"

"도서관에 있는 학습만화 정도는 괜찮을 거 같은데."

"어! 도서관에도 만화책 있던데요? 그럼 그건 되죠?"


그 이름하야 '슬램덩크'.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의 감동도 알 것이다.

폭력성, 선정성도 낮은 데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인증(?)도 거쳤으니.


그러나 제한이 풀리면 그 한계를 시험하는 애들이 있다.

이젠 집에서 만화책을 가져오는 아이도 생겼다.

이 만화는 좀 더 잔인했고, 일부 야했다.


일정기간 허용하고 집으로 가져가게 했다.

아침시간에 만화책만 펴는 것도 문제라 느꼈다.

만화책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내 머릿속엔 계속 남았다.


나도 즐겨보는 웹툰이 있지 않나.

요즘엔 아예 책으로 나오는 웹툰도 많은데.

글로 적힌 소설은 괜찮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면 나빠지나.

폰으로 웹툰 보는 건 금지라면서, 도서관엔 송곳, 신과 함께 단행본이 있는데.


분명 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해 학급의 정의를 세워왔다.

하지만 점점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경계가 흐려진다.

나는 얼마만큼을 허용할 수 있는 교사일까.



다리 꼬지 마


난 정말 이렇게 고민하고, 좋게 생각해보려고도 한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건 이 모든 일이 한 명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다면 웃고 넘기기도 할 텐데, 했던 애가 계속하니 얄미워진다.


그런 애가 수업시간 다리까지 꼬고 앉았다.

"야! 넌 그게 편하냐? 바르게 앉아!"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내 다리가 꼬여 있다.


'헉.. 내가 좀 강하게 말하려다 이리됐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담배는 피우지 마 하는 느낌에 민망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앉아 있다가 그냥 이쪽저쪽으로 다리를 꼬곤 하는데.


두발규정이 있었을 땐 어땠을까.

"요놈이 5cm나 더 길어 왔네? 일로와! 고속도로 만들어줄게!"

그 당시 선생님들은 머리카락 길이를 보며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겠다 싶다.


아직도 중등은 두발제한이 남아 있다지만 초등은 자유롭다.

노란 머리를 보든, 파마머리를 보든 화나지 않으니 다행이다.

언젠간 다리를 꼬든, 껌을 씹든 신경 쓰이지 않는 날이 오려나.


내 선을 시험하는 아이들 덕분에 내 생각의 한계를 점검하고 다시 세우게 된다.

하나 아무리 '펜트하우스'고 '오징어 게임'이고 다 본다는 요즘 초딩이라지만.

커피우유는 인정해도, 전담시간을 전자담배 시간이 되게 허용할 순 없으니.

교사란 아이들과 이 보이지 않는 선을 밀당하는 직업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급식은 옳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