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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Feb 27. 2016

정의의 패배와 결과주의

4. 사랑과 정의(2)

 누가 봐도 올바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회사에서도 옳은 얘기를 하다가 승진도 늦어지고 결국 회사에서 짤린다.

 누가 봐도 틀린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권력자에 아첨하고 더 강한 자를 잘 찾는다. 줄을 잘 타고 오래오래 살아남는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던 사람이 있다. 일본 앞에 대한민국을 외치다가 감옥에 갇히고 고문 끝에 돌아가셨다.

 자신을 위해 목숨 바쳤던 사람이 있다. 일본 앞에 충성을 다하고 권력자 밑에 새로운 권력자가 되어 돌아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그것이 결과주의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 왜 서울로 가는 것인가?



 정의란 옳은 목표를 갖고 옳은 방법으로, 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고의 순서를 보자면 옳은 생각이 가장 먼저다. 옳은 생각, 옳은 목표를 갖고 난 이후에야 어떠한 방법이 그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즉, 옳은 생각 없이 나온 정의는 없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 빼앗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홍길동은 가진가에게서 빼앗아 못 가진 자를 주었지.. 방법은 똑같이 '잘못'되었다.

 하지만 빼앗은 것이 다르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들의 식욕, 즉 생명을 빼앗았으나 홍길동은 가진 자의 권력욕, 사리사욕을 빼앗았다.


개인의 '더 배부름'을 위해, 다수의 '생존'을 빼앗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다수의 '생존'을 위해, 개인의 '더 배부름'을 빼앗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도 결과주의에 입각하여 생각한다. 방법과 수단의 정의는 나중의 문제다. 

결과가 옳은지 생각하라.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생각하라.


하지만 그 결과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주의하라! 결과론적인 해석은 정의를 파괴하는 주범이니까..

(연결: 육아와 결과론, 교육과 결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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