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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크라이트 Oct 08. 2021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롤로그

나는 쿠크다스 멘탈의 소유자다.

내 심장을 손으로 쥐면 물먹은 쿠크다스가 바스러지듯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 버석’


‘바삭’도 아닌 ‘버석’. 눈물로 축축해진 심장은 맥없이 부서져.. 아니 찐득하게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 달라붙어 녹아내릴 것이다.

힘없이 쪼그라든 나의 멘탈에 대해서는, 사실 이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 했을 뿐.


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 텅 빈 껍질뿐인 약한 자아를 움켜쥐고 정상인처럼 살아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남들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준은 내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남에게 무시받는 게 싫어 ‘하는 척’만 하는 삶.



대학생 때는 취업을 하려면 그래도 학점이 3.5는 되어야 한다고 해서 정확히 3.5를 맞췄다.

취업 준비생 시절에는 남들 다 하는 취업 스터디에 가입해 기계처럼 대기업, 공기업에 영혼 없는 자기소개서를 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상사와 거래처에 한소리 듣지 않을 만큼만 꾸역꾸역 일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이 즐겁지 않았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마저 벅찼다. 힘들고 괴롭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내가 생각하는 ‘평균 이하’로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모두가 이렇게 세상을 힘겹게 살고 있진 않았다.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미래를 개척하고, 내실을 다지는 어른으로 성장한 주변 친구들이 보였다.


나는 그 와중에 정신은 자라지 않은, 몸만 큰 성인이 되어 있었다. 주어지는 모든 일이 힘겹고 안전한 도피처로 자꾸만 숨고 싶어 하는 못난 어린아이가 가슴 깊은 곳에 박혀버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잊었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멈추자 정신적인 성장도 멈췄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너무나 공허하긴 했지만, 죽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를 방치하자 점차 행복이 뭔지 잊어버렸다. 그건 갑작스레 닥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서서히 사고 체계를 삼켰다. 느리게 진행되기에, 그때는 그 무서움을 몰랐으리라.


문득 돌아보니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좋은 날씨에 햇살을 받으며 걸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정서적으로 친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고립되었고, 모든 사고방식은 부정적인 곳을 향했으며, ‘나는 할 수 없다’,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집에 돌아오면 걸핏하면 침대에 드러누웠다. 온종일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기계적인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아래와 같이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불안과 우울 지수가 높습니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감정이라 고착화된 것으로 보여요.”


이것은, 자아가 부서진 채 ‘가짜 나’로 살아온 나의 치열한 고군분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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