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는 우직하게 걸으련다.

by 다크포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몸 담고 있던 업계에서 커리어를 인정받으며 잘 나가다던 나, 갑작스레 찾아온 경력단절로 나는 경. 단. 남이 되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지난 이 년 동안 일을 못하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도 예전에 했던 일로 돌아가기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혼 일 년 차 아직 신혼의 설렘이 끝나기도 전에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상상도 못 해본 큰 일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두 차례 암 수술과 수 차례의 항암을 겪으며 세상을 원망해봐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통증과 불안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맞이할 때마다 아침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침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그 밤 나는 무력했고 오로지 버티는 방법뿐이 최선이었다.


항암은 힘들었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특히 24시간을 딱 붙어 간호를 해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복부의 림프절과 폐, 간 까지 퍼졌던 암세포는 죽었다. 암 투병의 과정은 길고 힘들었지만 나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아직 앞길이 창창한 청춘인데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내 미래는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며 마치 미래를 도둑맞은 것만 같았고 항암 후유증으로 엉망이 된 몸을 가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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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암세포는 죽었지만 마치 정신의 암세포는 더 강해진 것처럼 우울감과 극심한 무기력을 겪으며 신세 한탄만 하던 어느 날 ‘책’이라는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무기력에 벗어나 보고자, 작은 성취감이라도 얻어보고자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남는 건 시간뿐이기에 한 달에 열 권 이상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좋았는데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돌아서면 책 내용이 기억 안 났다. 집중하지 않은 내 탓이라 고만 여겼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독서라고 하는 인풋 후에는 서평이라는 아웃풋이 따라왔어야 했다. 그래서 서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서평은커녕 독후감도 써본 적이 없던 내게 서평의 심리적 장벽은 높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책 읽은 게 아까워서라도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독서모임을 너무 가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모임 장소까지 갈 수 있는 체력조차 없었다.


책을 읽는데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독서모임을 갈 수 있는 체력부터 만들어야겠다는 목표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달리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면서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5km 거리에 살고 있는데 처음엔 병원을 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그러다 체력이 좋아진 면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고 요즘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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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달리는 과정에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그 자리는 긍정적인 감정들로 채워졌다.

더 이상 세상 탓만 하며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읽고 쓰고 달리며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고 내가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꿈도 꿔보았다. 막연한 꿈이지만 미래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놓지 않으며 꿈을 현실로 바꿀 궁리를 해보고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던 어느 날 꿈을 이룰 수 있는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몸담았던 업계에서 나만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많다. 글을 기가 막히게 잘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전문성으로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깨닫고, 전문성을 살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글을 팔기 위해 잠재 고객을 만나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매일같이 썼던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됐다. 포트폴리오의 좋은 반응과 함께 정식으로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감사한 마음과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나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빼앗긴 미래를 다시 되찾은 것만 같았다. 아직 내 청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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