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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Aug 06. 2019

패니잼 고 씨 (1)

〈편의점 이야기×에세이〉연재 02

희뿜한 흙먼지 날리며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온다.


이른 시간에 벌써 손님인가.


아직은 주먹만 한 오토바이에 시선을 둔다. 오토바이가 참외만 했다가, 금세 수박이 되었다가, 커다란 곰 인형으로 자라나 탑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고 씨의 입에서는 절로 욕이 나왔다.


“염병, 아침 댓바람부터 재수 없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소금이라도 꺼내와야 하나. 양손은 절로 허리춤에 올라간다. 붉은 시티100이 탈탈거리며 끄윽 편의점 앞마당에 멈춰 선다.


아무리 촌이라지만 오토바이 타면서 헬맷도 안 쓰고, 오살할 놈.


“성님. 잘 계셨소.” 녀석이 능글맞게 웃는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고작 사흘 전에 봤는데 잘 계시고 말고 할 게 있당가, 하려다가 말을 누른다. ‘그놈’과는 아예 상종을 않는 게 상책이라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고 씨는 꿀꺽 침을 삼킨다. 오늘은 또 뭔 시비를 걸라고 왔당가, 하는 대꾸도 안으로만 씹는다.


“오늘은 좋은 일로 왔응게로, 인상 좀 푸쑈.”


고 씨의 마음을 읽은 듯 말한다. 녀석은 숫제 섭섭하다는 얼굴이다. 청소하려고 테이블 위에 뒤집어 올려놓은 의자 하나를 척 집어 들더니 바닥에 내려놓고 다리를 쭈욱 펴고 앉는다. 맞은편 의자도 내려놓고, 톡톡, 이야기 좀 하자는 모양으로 의자 등받이를 두드린다. 어쭈, 완전히 자기 가게처럼 군다. 오살할 놈.


녀석이 바지 뒷주머니에 돌돌 말아 가지고 온 신문을  파라솔 테이블 위에 툭 던지며 올려 놓는다.


완도신문.


“성님도 이제 유―명 인사 다 되아부렀소, 잉.”


또 능글맞게 웃는다. 오살할 놈. 아직 마수걸이도 안 한 시간에 신흥리 민수가 왜 이렇게 쪼르르 달려왔는지, 신문을 보자마자 고 씨는 알았다.


알다마다, 왜 모르겠는가. 신문 5면 중앙에 큼지막하게 고 씨 자신의 사진이 실렸다. 조만간 읍내에 가면 달력 크기로 확대 복사하고, 반질반질 코팅도 해놓을 생각이다. 신문 기사를 액자에 이쁘게 넣어 제작해주는 업체가 있다는데 그것도 알아보는 중이다. 액자를 카운터 벽면 어디쯤 걸어놓을 것인지, 마음속으로 이미 정했다. ‘완도신문에 실린 편의점’이라고 프랑카드도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아내는 말했다.   




덕화도에 처음 편의점이 생긴다고 했을 때, 모두 ‘바보짓’이라 했다. 배 타고 20분 안 되는 거리긴 하지만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없고 변변한 해수욕장 하나 없는데다, 유명한 관광지는 결코 아니고, 갯바위 포인트 삼아 오가는 낚시꾼들이나 종종 있을 뿐, 인구는 탈탈 털어 3천 명 될까 말까, 그것도 모두 노인네뿐이고, 온통 양식장만 가득한 이 섬에 무슨 편의점인가, 입을 모았다.


“희선이가 서울살이 오래 해서 촌 사정을 여 몰라. 쯧쯧.”


혀를 차는 이면에는 곧 망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원래 덕화도 기흥리에는 점빵이 하나 있었다. 남평댁이 40년 넘게 운영하던, 간판은 물론 없고, 그저 남평댁 사는 집 사랑방 하나 터서 벽면에 얼기설기 진열대 (비슷한 것) 하나 만들고 놓고, 어디서 주워온 작은 책장을 보조 진열대 삼아 몇 가지 과자, 음료수, 라면, 조미료 나란히 펼쳐놓고 팔던 작은 점빵이 있었다. 시골 어느 마을에나 하나쯤 있는, 주업이 아니라 부업 삼아, 부락민 위한 자원봉사 삼아 한 사람이 총대 메듯 운영하던 그런 점빵이었다.


촌동네 점빵 주인이 가게 비우는 일이 별난 일인가. 어디 간다는, 언제 온다는, 쪽지 한번 남긴 적 없다. 밭매러 고추 따러 쇠꼴 먹이려 새참 나르러 가게 문도 안 닫고 남평댁은 휭 나간다. 누구든 주인 없는 가게에 들어와 막걸리 한 병 쓱 들고 가면서 장판 위에 천 원짜리 한 장 달랑 올려놓고 가기도 하고, 장부에 끼적끼적 적어놓기도 하고, 아예 그냥 물건만 들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까무룩 잊는 경우는 있어도 일부러 떼어먹는 사람은 없이 40년간 무탈하게 운영하던 점빵이었다. 고 씨도 어렸을 적 수시로 드나들었다.


남평댁이 팔순을 넘기며 점빵은 쇠했다. 예전처럼 사나흘에 한 번 읍내에 나가 물건 떼어올 만큼 팔팔하지 못하고, 언제부턴가 마을 사람들도 읍내에 가면 하나로마트에서 한가득 실어와 집안에 쟁여두었다. 집집 냉장고가 점빵이 됐다. 기흥리 점빵이 시대의 소명을 다한 지도 벌써 몇 년 되었다.


“점빵도 사라진 마당에 패니잼은 뭐당가.”


시골 할매들은 편의점을 ‘패니잼’이라고 불렀다.


그냥 슈퍼라고 부르는 할매도 있었지만 “아따, 수퍼는 아니랑게요” 라는 이장님 말씀에,


“그럼 뭐여?”


“편의점이랍니다. 편, 의, 점.”


“패니?”


했던 것이 기흥리 국어사전 고유명사 ‘패니잼’이 되었다.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누가 이런 편의점 ― 패니잼을 가겠는가 했다.



개업식은 볼 만 했다. 다음 지방선거에 군수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읍장님이 찾아와 기나긴 축사를 해주고(초대도 안 했는데 왔다), 역시 내년에 총선이 있어 그런가, 지역 국회의원은 큼지막한 화환을 보내줬다(꽃보다 이름 석 자가 더 크더라). 광주에서 온 편의점 지역본부장이랑 영업팀장, 그리고 읍장, 이장, 고 씨, 고 씨 아내, 그렇게 편의점 앞마당에 나란히 서서 테이프 커팅식까지 했다. 돼지머리 모셔놓고 정중히 무릎 꿇어 고사도 지냈다.


잔치는 끝났다. 동네 어르신들이 한두 명씩 순시하는 마냥 뒷짐 지고 찾아와 “패니잼이 뭐당가” 둘러보고 가고, 부녀회 아짐들도 “읍내에 있는 펴니점이 우리 기흥에 생겼다고?” 하면서 떠들썩 무리지어 찾아오고, 그러면서 삼각김밥 한 번씩 주물러보고, 샌드위치도 꼭꼭 눌러보고, 도시락은 좌우로 흔들흔들 뒤집어 관찰하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오메, 반찬이 열두 개여, 열두 개! 솔찬하구만” 하면서 감탄하고……. 그러고는 다들 빈손으로 갔다. 온 김에 담배나 한 갑 사가는 정도. (담배는 전국 균일가니까.)


차라리 그만하면 다행이지만 다들 가격표를 보면서 “옴매, 쏘주가 천팔백 원이라고?” “남평덕이 할 때는 천이백 원 받았는디.” “읍내 하나로에서는 천오백 원 하는디” 하면서 ‘고 씨 저놈이 도둑놈이네’ 하는 표정으로 흘겨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그럴 때마다 고 씨는 “아따 가격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랑게요. 이것이 뿌랜차이즈요, 뿌랜- 차이즈” 하면서 ‘프랜’에 한껏 강세를 두어 일단 외래어로 상대의 기를 눌러보기도 하고, 세상 억울하고 슬프다는 표정으로 하소연하기도 했다.


오전에는 고 씨가 편의점에 나와 있고, 오후에는 고 씨 마누라가 나와 둘이 함께 가게를 지켰다. 그렇게 서너 달. 편의점 면적 절반을 잘라 낚시용품점으로 운영하다 보니 가끔 찾아오는 낚시꾼들 이외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태풍이 훑고 간 지난 8월에는 사흘간 매출이 0원인 날도 있었다. 태풍 때문에 상품 배송 트럭이 아예 덕화도에 들어오질 못했다. 하긴 편의점이 훌렁 날아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태풍이었지. 20년 만에 큰 태풍이라 하였지. 모든 것은 태풍 때문이라고, 고 씨는 투덜거렸다.


“그러게 이 양반아, 낚시용품점만 하면 되았제 뭣하러 편의점을 하자고 해갖고 이런 사달을 맹그요, 사달을…….”


아내가 닦달하면 고 씨는 “이러면서 자리 잡아가는 거지” 하면서 뭉게뭉게 먼 산에 걸린 구름만 바라보고, 그러다 끊었던 담배를 슬그머니 다시 피우기 시작하고(편의점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이 손에 닿는 상품이 담배이니까), “어휴, 내가 못 살아, 못 살아” 하면서 고 씨 마누라의 짜증은 더해만 가고, 그럼 이제 고 씨도 “자네는 그냥 집에 있을 것이제 뭣 하러 가게 나와서 속뒤집는 거여!” 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질 즈음 평화의 전도사처럼, 아니 구세주처럼 등장한 인물이 ‘스푼’이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스푼이 왕림한 이후로 GS25 덕화제일점의 운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고 씨가 덕화도에서 편의점을 해봐야겠다 마음먹으며 예상했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



― 〈편의점 이야기×에세이〉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 브런치를 통해 연재합니다.

―  그림은 대학 새내기인 딸이 그렸습니다. 글과 그림의 저작권을 존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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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  프롤로그 : 딱 편의점만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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