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주하는 직원은 고객님의 소중한 가족"
사실 지금 우리 편의점은 손님들과 낯붉힐 일 자체가 별로 없다. 회사 안에 있는 편의점이다보니, 손님과 근무자가 서로 조심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우리 매장을 담당하는 본사 관리사원이 농반진반 ‘편의점 업계의 천국’이라 부를 정도.
유흥가에서 잠깐 편의점을 하던 시절은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들곤 했다. 그런 과정에 터득한 방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딱딱하게 대하기’였다. 활짝 웃어주면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예 말 섞을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쌀쌀 맞게 대하자는 것이 나만의 삐딱한 생존법이었다. 야간타임 유흥가 편의점에서 너댓 시간만 근무를 서면 누구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지기도 한다.
진상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편의점 근무자 자체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다. ‘기껏 편의점이나 하는 주제에’, ‘하찮은 편의점 알바 주제에’...... 깔보고 얕보는 태도가 한눈에 읽힌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랬다지만 정말 그런 사람에게는 껌 한 통도 팔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대판 싸우고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사람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또 다른 부류는 자기가 손님이라는 사실을 대단한 벼슬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물론 손님 한 명 한 명은 고맙고 소중하다. 손님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하지만 편의점은 무한대의 서비스 업체가 아니다. 모든 소매점에서는 서비스의 정상적 기대치가 존재한다. 편의점 근무자라면 인사하고, 물건을 계산해주고,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이것이 접객의 기본이다. 그런 기본에 충실하면 되었지,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때로 월권이고, 혹여 그것을 강요한다면 폭력에 가깝다.
식당이든 편의점이든 카페나 미용실이든, 어딜 가든 그곳 직원이 자신에게 굽신거려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 고위층이나 부유층이어서 그런 습성이 몸에 밴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캐보면 사회에서 을(乙)중 을로 살아가는 경우가 적잖다. 자신의 수모를 여기저기서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소중한 가족일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홍보물이 내려왔다. 모든 가맹점에 이것을 부착하란다. 좋은 일이다만, ‘도둑질 하지 말자’는 말만큼이나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카운터 전면에 붙여놓아야 한다니, 어쩌면 부끄럽고 씁쓸한 일이다.
굳이 ‘가족’까지 찾을 필요 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된다. 내가 손님이고 당신이 직원이라면, 그렇게 위치를 바꾸어 보았는데도, 당신은 손님이 내게 돈을 집어던지기를 기대하는가? 반말을 듣기를 원하는가? 욕지기를 들어도 참을 수 있는가? 무시하는 발언 앞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가?
만약 여기에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내력의 달인이거나, 어쩌면 그것이 오롯한 당신의 수준이다. 당신이 살아가게 될 세상도 딱 그만한 세상이다.
손님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 직원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 모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