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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롱이언니 Jun 26. 2024

엄마가 죽은 날,
나는 일주일 동안 로봇이었다

사망 선고, 장례식, 핸드폰 상담원의 눈물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랑 함께 마트에 다녀오던 중, 갑자기 걸음걸이와 손짓이 이상해지셨다고 한다.

바로 뇌경색 증상이었다.

다행히 아빠가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대학 병원으로 데려가셨다.

엄마는 뇌경색을 뚫어주는 시술을 받았고, 후유증 없이 일주일 뒤면 퇴원할 예정이었다.


같은 호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분들과 병원 관계자분들도 초기 대처를 잘하셨다고 칭찬하셨고,

회사에서 아빠의 연락을 받고 긴장된 마음으로 찾아갔던 나도 안심했다.

병문안 온 이모들과 함께 과일을 먹으며 다행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출근을 위해 집으로 가야 했다.

엄마와 웃으면서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들었다.

이후로 엄마는 병원 밖을 나오실 수 없었다.

우리 엄마는 이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잔인한 사망 선고


일주일 뒤면 퇴원한다던 엄마에게 갑작스럽게 뇌출혈이 왔다.

뇌경색에 뇌출혈이라니... 엄마의 뇌가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렸다.

한쪽 뇌는 혈관이 막혀있고, 다른 쪽 뇌는 혈관에 출혈이 생겼기에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사망 선고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빠와 나는 엄마 짐을 챙기러 집에 다녀왔었다.

엄마의 바이탈 체크기에서 삐-하는 소리가 시끄러웠었는지 선을 뽑아둔 상태였다.


곧 의사 선생님이 오셨고,

의사 선생님께서 '2017년 12월...'이라는 운을 뗀 순간

나도 모르게 의사 선생님 손을 두 손으로 잡아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잠깐만, 잠깐만'이라고 말해버렸다.

내 간절함이 무색하게 선생님은 사망 선고를 하셨다.




회사 일 같았던 장례식


나는 외동딸이고, 아빠는 너무 충격이 크셨기 때문에 이후 모든 일은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은 사망 선고 이후에 병원과 연계된 장례식장에서 하게 된다.

대학 병원이었기 때문에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그저 나는 가격표를 보고 호실, 관, 수의, 꽃장식 등을 고르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장례식이 참 편하고 쉬운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마치 '장례식'이라는 큰 행사의 프로젝트 오너가 된 느낌이었다.

회사 일처럼 해야할 목록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는 로봇 같았다.

그래서인지 별로 슬프지 않았다. 그냥 머리가 너무 아플 뿐이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힘들어하실 친척분들과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매일 약국에서 비타민까지 가득 사 와서 대접했다.

손님들이 오시면 테이블로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엄마가 왜 돌아가셨는지 친절히 설명해 드렸다.

엄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했다.

향을 피우지 않고 국화를 가득 놔두었다.

교회 분들이 많이 와주셨고, 목사님께서 예배를 해주셨다.

엄마의 고향인 진도에 내려가서 수목장을 한 뒤, 드디어 공식적인 '행사'가 끝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 아빠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친척들께서 아빠에게 딸이 일처리를 너무 꼼꼼하게 잘한다며 아들 부럽지 않겠다고 하셨댔다.

아빠는 내가 자랑스러우셨나 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뺏겼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장례식 이후에도 수많은 일들이 남아있다.

동사무소에서 사망 신고를 하고, 사망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사망 확인서는 추후 여러 가지 일처리를 위해 여러 장 발급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망자의 재산을 통합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했다(정부 24 사이트).

이 서비스를 통해 엄마의 계좌, 보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서 편했다.


여러 가지 서류 처리, 엄마의 짐 정리, 보험 처리 등을 하느라 슬픈 딸 역할은 잠시 미뤘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자 남은 일은 엄마의 핸드폰 해지였다.

 



핸드폰 상담원의 눈물


대략적인 일을 모두 끝내고 오랜만에 침대에 편하게 누웠다.

아빠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엄마 핸드폰 통신사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핸드폰을 해지해야 하는데, 혹시 위약금이 있을까요?"

라고 상담원에게 마치 남의 일처럼 또박또박 친절하게 말했다.


상담원은 놀라시며 애도를 표하셨고, 위약금은 따로 없다고 설명해 주셨다.

사망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망확인서를 보내기만 하면 됐다.

상담원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뒤 마지막 인사 멘트를 하셨다.


"올해에는 행복한 일 가득하세요."

"..."


순간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서 주체할 수 없었다.

몇 분 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울었는지 상담원께서도 함께 울어주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랑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울 수 없었다.

사실 울어도 됐었는데, 슬퍼하고 엉엉 우는 게 정상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가 더 슬퍼할 것 같았고 꼿꼿하게 정신차리고 있던 내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담원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슬픔이 터져 나왔다.

그분께서 함께 울어주신 시간이 너무 고마웠고 위로가 되었다.

덕분에 나도 지금 너무 슬프고 힘든게 맞다는 인정을 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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