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서명의 무거움, 누가 환갑이 당연하대?
서명의 무거움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면 생각보다 보호자로서 서명해야 할 것이 많다.
아빠는 엄마가 중환자실로 옮긴 다음부터는 보호자 서명을 하기 싫어했다.
이때부터 나는 '공식적으로'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보호자 서명은 엄마 또는 아빠가 하던 것이었는데,
내가 보호자 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어색했다.
입원 후 장례식까지 꽤 많은 서명을 했던 것 같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서명은 세 가지이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의식이 온전치 않았다.
가끔씩 의식이 돌아올 때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엄마는 의식이 온전치 않았지만 소변줄은 불편했는지, 자꾸 손으로 빼버리셨다.
그래서 간호사께서 엄마의 팔과 다리를 침대에 결박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환자의 몸을 침대에 결박하기 위해선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이 방법이 엄마에게 꼭 필요한 방법일까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소변줄을 자꾸 강제로 빼시면 위험해요."
"엄마 의식이 돌아오면 엄마한테 여쭤보고 사인할게요"
엄마가 의식을 차렸을때
본인의 몸이 침대에 묶여있다면 너무 절망스러울 것 같아서 꼭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 엄마가 자꾸 소변줄을 빼서 팔이랑 다리를 좀 고정해야 할 것 같아."
엄마는 눈을 반쯤 뜬 상태로 나와 얘기했다.
"내가.. 소변줄을 자꾸 빼?... 내가 그랬어?"
"응, 엄마~ 그래서 엄마 팔이랑 다리를 침대에 고정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응... 괜찮아"
"응, 엄마~ 그럼 살살 고정해 달라고 할게~"
그래도 이번 서명은 엄마에게 물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 서명들부터는 엄마가 혼수상태였기 때문에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뇌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서류에도,
심정지가 와도 심폐소생술이나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서류에도 서명했다.
물론 의사 선생님께서 엄마의 뇌를 수술해도 수술대 위에서 돌아가실 확률이 크고,
정말 잘 버틴다고 하더라도 평생 식물인간상태일 거라고 하셨지만,
내가 보호자라는 이유로 이런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 의사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중대한 서명은 보호자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결정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랐지만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도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서명을 하는 순간에도 내가 엄마를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판사처럼 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다.
왜 아빠가 나에게 서명을 미루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이때의 일로 큰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엄마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엄마가 죽고 난 3년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가 환갑이 당연하대?
엄마가 입원한 다음 해는 엄마의 환갑이었다.
나는 엄마 환갑 기념으로 제주 가족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해외로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비행기를 길게 타는 것은 싫다며 제주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환갑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환갑잔치 대신 지인끼리 간단한 식사 자리를 마련하거나 여행을 가는 추세이다.
이 당연한 환갑이 엄마에겐 오지 않았다.
제주 여행을 환갑까지 미루지 말고 갈 걸 그랬다.
그랬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