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대환장 파티, 애도의 5단계는 언제 지나가는 거지?
감정의 대환장 파티
엄마가 돌아가시고 회사에 복귀하자 팀장님께서 책을 추천해 주셨다. 김형경 저자의『좋은 이별』이라는 책이었다. 저자가 정신분석을 받은 후 긴 훈습 기간을 보내며 체득한 내용을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난 이 책을 바로 구입해서 읽어보았고, 이 책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인터넷에도 여러 글들을 찾아봤다. 살면서 처음 맞닥뜨린 내 상황을 빨리 해결해버리고 싶었다.
애도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외면-분노-타협-우울-수용인데 사람마다 이 단계를 순차적으로 겪기도 하고 전 단계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1년 정도 회피했던 것 같다. 그냥 엄마는 잠깐 여행 간 것이며, 소파에 앉아있으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물론 엄마가 죽었다는 상황은 알고 있지만 머리로 안다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랐다. 이때쯤 영화관에『스타 이즈 본』이라는 영화를 혼자 보러 갔는데,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며 추모 공연을 하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대성통곡했다.
Wish I could, I could've said goodbye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I would've said what I wanted to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Maybe even cried for you.
(당신을 위해 울기라도 했다면)
If I knew, it would be the last time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I would've broke my heart in two
(내 마음을 반으로 부러뜨렸을 거야)
Tryin' to save a part of you
(당신의 한 부분이라도 간직하려 했을 거예요)
내 마음을 기가 막히게도 대변해 주는 가사였다. 내가 남녀의 사랑 노래를 들으며 엄마를 생각하며 울게 될 줄이야. 그렇게 스크린이 다 올라갈 때까지 꺽꺽대며 울었다.
애도의 5단계는 언제 지나가는 거지?
난 애도가 1년 동안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더 이상 집에 올 수 없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을 때 엄마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애도는 끝난 게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우울도 모두 나에게 맡겨진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도 바빴지만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하셨다. 아빠의 이런 의지들이 너무 싫었고, 친척들이 나에게 아빠를 잘 챙겨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너무 화가 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2년 뒤부터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미쳤나 싶을 만큼 아빠에게 화가 났다. 아빠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생각들이 종종 들었다. 이제 슬픔이 조금 잠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분노라니! 아빠가 티비를 보면서 웃는 것조차 화가 났었다. 내가 성격파탄자가 된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갑자기 이유를 모르게 우울해지고 회사에서는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하면서도 집에 오면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 또다시 이 상황들을 외면하기도 하고 분노-우울-회피가 되풀이 됐다.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였다. 주변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내 스스로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영상들과 인터넷 글을 보면서 애도하는 사람들의 상담 모임이 있다는 정보를 봤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찾아봤을 당시에는 이런 모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합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