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장 (訃告狀)

모든 것의 시작은 한 죽음이었다.

by 시골아재

형광등 불빛은 차가웠고, 회의실의 공기는 일주일 묵은 먼지처럼 탁했다. 의미 없는 단어들의 핑퐁이 오가는 지루한 오후. 내 세상은 언제나처럼 정해진 각본대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서 진동이 짧게 울리기 전까지는.


동창놈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이었다. 또 어떤 선배의 자녀가 결혼을 하거나, 부모님이 칠순을 맞으셨겠거니. 무심코 화면을 켠 내 눈에,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박힌 부고장 링크가 날아와 박혔다.


숨이 턱, 하고 멎었다. 심장이 차가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일순간 음소거되었다. 눈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부장의 입이 뻐끔거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과 사흘 전 밤,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자라!"


며 퉁명스럽게 끊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도 화면 속 이름 석 자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멍하니,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 하나가 예고 없이, 복구 불가능하게 찢겨 나갔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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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국화꽃의 비릿한 인공향과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몸에 맞지 않는 검은 양복은 유난히 까슬했고, 낯선 구두들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신경을 긁었다. 나는 검은 넥타이를 고쳐 매고 영정 사진 앞에 섰다. 활짝 웃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비현실적이었다. 상주인 친구의 아내와 어린 딸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빈소에서 늦게까지 조문객들을 맞았다. 친구로서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정신없는 이틀이 지나고 발인 날 아침, 나는 하얗게 센 머리로 주저앉아 있는 친구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어색한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내게 말했다.


"그 사람,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바다가 보이는 데서 작은 로스팅 카페 하고 싶다고. 맨날 유튜브로 바리스타 영상만 보면서… 자기는 나중에 꼭 그렇게 살 거라고. 결국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그냥 저질러보라고 등 떠밀 걸 그랬어요. 무섭다고 말릴 게 아니라…"


그 순간, 무언가 내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친구가 꿈꾸던 삶. 그리고 그 꿈을 영원히 펼치지 못한 채 마감된 인생.


그렇다면 나는?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시골에서 올라와 컨설턴트로 성공하고,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사고,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나는 그 모든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런데 왜,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을까. 내 인생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정작 클라이언트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결과 보고서만 손에 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선율의 곁에서 잠들 수 없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 였다. 25년간 내 불면증의 유일한 치료제였던 그녀의 고른 숨소리가, 이제는 나를 옭아매는 쇠사슬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의 작은 뒤척임에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고, 다시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한때 나의 우주였던 저 사람이, 어째서 지금은 가장 먼 행성처럼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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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로 나와 커피를 내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신성한 의식이었다. 내가 직접 로스팅한 과테말라 안티구아 원두를 꺼내 갈았다. 드르륵, 드르륵. 고요한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낮은 소음. 그 소리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필터에 원두를 담고,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는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만 나는 잠시 안정을 찾았다.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때로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에 차를 몰았다. 인적 없는 자유로를 달리며, 내가 좋아하는 90년대 팝송을 크게 틀었다.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차창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정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였다.


"선배, 저 부산에 작은 컨설팅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혹시 저희 파트너로 와주실 수 있으세요? 선배의 경험과 통찰력이 절실합니다."


부산. 내 머릿속에 안개처럼 떠다니던 단어. 친구가 꿈꿨던 바다가 있는 곳. 내게 주어진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단숨에 건너뛸 수 있는 리셋 버튼.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 내게 보낸 마지막 탈출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율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한참 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준비한 말을 뱉었다.


"나, 부산에 일자리가 생겼어. 가야 할 것 같아."


선율은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 고요한 눈빛은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이사 날짜 잡히면 알려줘."


그것이 끝이었다. 그녀의 무덤덤함은 내 결심에 마지막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나는 그저 마침표를 찍는 것뿐임을. 그녀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대한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나는 내 서재의 책과 옷가지, 그리고 커피 도구들만 단출하게 챙겼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부산에 잠시 내려가서 일하게 되었다"


고 둘러댔다. 딸 시연은


"네, 그러세요."


라며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고3 아들 우진이는 애써 밝게 웃으며


"아빠, 긱사 생활 시작이네! 주말엔 맛있는 회 사 들고 오는 거지?"


하고 농담을 던졌다. 그 서툰 배려가 가슴을 찔렀다.


떠나는 날 아침, 선율은 현관문 앞에서 나를 배웅했다.


그녀는


"운전 조심해"


라는 짧은 말을 건넸을 뿐, 잡거나 울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섰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며 백미러를 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나는 자유로워졌다.

혹은, 완벽한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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