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라는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한주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고, 또 주말 아침이 밝았다.
토요일 아침, 낯선 햇살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마주한 것이 ‘처리할 일’이 아니라 온전히 감당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끝없이 펼쳐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시간.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혹은 외면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쌓여 있는 박스들을 풀고, 책들을 꺼내 책장에 꽂았다. 옷들을 옷장에 걸고, 주방용품들을 서랍에 정리했다.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정리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서재가 될 작은 공간에 책상을 조립하고, 노트북과 서류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벽에 작은 코르크보드를 걸었다. 중요한 메모나 일정을 붙여두기 위해서 였다.
서울 집에서 가져온 서류 박스를 열어,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개요와 연락처들을 꺼내 보드에 압정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박스 맨 아래, 다른 서류들 사이에 껴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선율이 챙겨준 것이 분명했다. A4 용지에 깔끔하게 프린트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시간표 및 영역별 문항 수’.
그것은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아들 우진의 지난 12년, 그리고 나와 선율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압축된 하나의 상징물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시간표를 코르크보드 정중앙에 붙였다. 내 프로젝트 서류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수능 시간표. 그것은 나의 새로운 삶과, 내가 벗어 던진 삶 사이의 어색한 동거처럼 보였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그 시간표를 올려다봤다.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까만 글자들이 나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그 역할에 대해 나는 얼마나 충실했는가. 나는 언제나 스스로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일해서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책임졌고,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족함 없이 지원했다. 그것이 아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들의 성적표에 사인을 하고, 가끔 주말에 외식을 하고, 일 년에 한 두번 휴가를 가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아빠와 함께하는 과학 교실’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중요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 잡혀 있었다.
"선율, 당신이 대신 가주면 안 될까?"
내 말에 선율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날 저녁,
그녀는
"우진이가 많이 서운해하더라. 반에서 아빠 안 온 애는 우진이 포함해서 세 명이었대."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나도 가고 싶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 내가 일하는 게 다 누굴 위해서인데."
라고 대꾸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억울했다.
나는 아이들의 삶에 ‘결과’로만 존재했다. 과정에는 없었다.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고,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은 모두 선율의 몫이었다. 나는 그저
"이번 달 학원비야."
라며 돈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우진이가 어렸을 때, 우리는 함께 레고를 조립하며 몇 시간이고 대화 없이 집중하곤 했다. 설명서를 분석하고, 부품을 찾아 조립하는 그 논리적인 과정이 좋았다. 우진이는 내가 만든 정교한 결과물을 보며 눈을 빛냈고, 나는 그 아이의 경외감 어린 시선에 만족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레고보다 친구와 게임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우리의 공통분모는 사라졌다. 나는 아들과 마주 앉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서먹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작년 여름,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우진이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아빠, 아빠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행복해서 하는 거야?”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행복. 너무나 낯선 단어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행복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우진아, 어른의 세계는 행복만으로 사는 게 아니야. 책임감을 갖고, 자기 몫을 해내는 게 중요한 거지.”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인생의 모범답안을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우진이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때 선율이 방으로 들어와 우진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진아. 네가 뭘 하든, 네가 즐겁고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정답을 말하고, 선율은 위로를 건넨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솔루션이 아니라 공감이었다는 것을.
나는 코르크보드 앞을 떠나 창가로 걸어갔다. 나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프로젝트처럼 관리해왔다. 목표를 설정하고, 자원을 투입하고, 결과를 평가했다. 그리고 이제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대학 입학’이라는 과업을 앞두고, 나는 프로젝트 관리자(PM)의 자리를 스스로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약간 잠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어, 아들. 자고 있었어?”
“아니, 인강 듣다가 잠깐 졸았나 봐.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공부는 잘 돼가나 해서.”
참으로 멍청한 질문이었다. 고3에게 공부가 잘될 리가 있나.
“응. 그냥 뭐… 하고 있어.”
우진이는 짧게 대답했다. 수화기 너머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라. 아빠가 주말에 맛있는 거 사서 올라갈까?”
“아니야, 아빠. 괜찮아. 나 주말에도 계속 독서실 가야 돼.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줘.”
아들의 목소리는 애써 어른스러운 척하고 있었다. 그 서툰 배려가, 내가 그의 인생에서 이미 한 발짝 물러난 외부인이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 알았다. 피곤할 텐데 쉬엄쉬엄해라.”
“응, 아빠도.”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힘내라’는 공허한 격려와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물질적인 제안 뿐 이었다. 나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껍데기였다.
나는 다시 코르크보드 앞으로 돌아와, 수능 시간표를 가만히 응시했다. 저 네모난 칸들 안에 내 아들의 미래가,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쳐 온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내가 끝까지 완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무거운 역할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