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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Sep 13. 2021

하버드의 D를 빼앗다!

Harvard's Got Nothing on Us!!!

다트머스는 유독 학생들과 동문들의 애교심(?)이 넘치는 편이다. 그렇기에 1학년 가을 학기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홈커밍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문들이 모두 학교로 돌아와 함께 즐기는 홈커밍은 컬리지 타운인 해노버의 가장 큰 축제이다. 신입생들이 모두 “초록빛 피를 흘릴 때까지” 한 달간 계속된 DOC Trip,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각종 기숙사 내 프로그램들은 사실 홈커밍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셈이다. 홈커밍은 그야말로 다트머스 ‘부심’으로 똘똘 뭉친 패기 넘치는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치르는 행사이며, 애교심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리고 홈커밍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바로 미식축구 경기이다. 홈커밍 미식축구에는 ‘러쉬 더 필드! (Rush the Field!)’라는 전통이 있다. 신입생 중 누군가는 경기의 하프타임 때 경기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한다는 것인데, 홈커밍 시즌이 다가오면 선배들은 슬슬 신입생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올해는 어떤 용기있는 신입생이 러쉬 더 필드를 하려나? ”

“우리 때는 10명도 넘게 뛰었지 아마? 올해는 몇 명이나 하려나? 설마 아무도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신입생을 슬슬 자극하는 선배들과는 달리, 학교에서는 기숙사 조교 등을 통해 “러쉬 더 필드”는 불법이며 잡히면 정학이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는다. 자칫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나 안전 사고가 생길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보.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은 슬슬 서로를 떠보기 시작하고 “내가 하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드디어 경기 날! 2010년의 경기 상대는 하버드였다. 미식축구는 TV로도 본 적이 없어서 규칙도 잘 몰랐지만 한껏 들떠있던 나는 초록색 털모자에 초록 후드티를 입고 얼굴에는 “하버드는 구리다!”라는 내용의 다소 과격한 페인팅을 한 뒤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를 나섰다. 

(진짜 초록 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메모리얼 필드에 가까워질수록 북적이는 소리가 들렸고, 경기장에는 해노버 경찰 (H-PO)까지 출동해 있었다. 홈구장인 다트머스의 관중석에는 초록 물결이 가득한 반면, 하버드 쪽에는 사람이 듬성듬성 앉은 것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이 날 약 10,000여 명의 사람들이 왔다고 하는데, 이 중 90% 이상이 다트머스를 응원했으니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다트머스의 위세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하고 나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버드 팀이 첫 쿼터에 무려 14점을 득점하는 동안, 다트머스 팀은 전혀 득점하지 못했다. 두 번째 쿼터에서 역시 하버드가 13점을 득점하는 동안 다트머스는 7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녀가 규칙도 채 파악하지 못한 사이에, 점수판의 점수는 자꾸만 벌어져 갔다. 비극적이었던 전반전이 끝나고 스코어는 7:27.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버터처럼 쳐발리는 중...)

침울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하프타임 쇼에는 각 학교의 치어리더 응원전에 이어, 하버드의 행진 악단 (Marching Band)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찰까지 왔으니 역시 올해는 아무도 러쉬 더 필드를 하지 않으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던 찰나, 대여섯명의 초록 옷을 입은 남학생들이 하버드 행진 악단의 열을 흩트리며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침울했던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 남학생은 치어리더 응원전에 사용했던 H A R V A R D 의 각 알파벳을 적힌 패널을 향해 돌진하더니 그 중 DARTMOUTH의 첫 글자인 D패널을 번쩍 들어 관중석을 향해 흔든 후, 그대로 들고 쏜살같이 경기장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하버드 치어리더 팀의 남자 멤버 두 명이 빼앗긴 D 패널을 사수하기 위해 그를 뒤쫓았지만 이미 그 영웅은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간 후였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목격한 관중석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지금 봐도 애교심이 넘쳐서 초록 피가 나올 것만 같다...)


D 패널을 빼앗기며 기도 함께 빼앗겼는지, 하버드는 후반전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3점을 추가로 올리는데 그쳤다. 반면 러쉬 더 필드로 힘을 얻은 다트머스는 4쿼터를 리드하며 7점을 득점했다. 비록 다트머스의 막판 선전에도 불구하고 하버드가 초반에 워낙 점수 차이를 벌린 탓에 결국 14:30의 최종 스코어로 패배했지만, 러쉬 더 필드 이래로 관중석의 분위기는 이미 이긴 것 이상으로 뜨거웠다.


“괜찮아! 승패 따위는 상관 없어”

“Class of 2014 덕분에 러쉬 더 필드에 새로운 전통이 하나 추가되었는걸?”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치솜과 그녀의 언니를 만났다. 치솜의 언니는 하버드에 다니는지, 하버드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자매가 각자 모교의 후드티를 입고 둘이 사이좋게 경기를 구경한 모양이었다. 둘은 “하버드는 구리다!”라고 적힌 내 볼의 핸드페인팅을 빤히 쳐다보며 웃었다.


“하버드 너무 미워하지 마. 우리가 잘하는걸 어떡해?”


치솜의 언니가 귀여운 표정으로 얄미운 농담을 던졌다. 비록 다트머스가 졌지만 나는 얼굴에 써 있는 페인팅이 민망하지 않았다. Class of 2014는 새로운 전통을 만든 자랑스러운 학년이니까!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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