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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8. 2021

2학년 수난시대: 마약 탐지견(?)으로 거듭나다

Struggles in South Mass 206

 “아아악!!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 너 지금 뭐하는거야?” 


새벽에 깨어 비몽사몽간에 화장실에 간 나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한 남학생이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문도 안 잠그고 여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경직된 내 표정을 보고도 그 남학생은 술이 덜 깼는지, “하이” 하고 태연하게 인사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안 그래도 낡은 빌딩이라 화장실이 지저분해서 짜증 나는데 이제는 별 일이 다 있군’ 나는 궁시렁대며 결국 다른 층에 올라가 일을 보고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송희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어. 우리 다음 학기에 이사가자. 나 진짜 더 이상 여기서 못 살겠어. 여기 애들 다 너무 이상해!”


노스 매스, 미드 매스, 사우스 매스 총 세 개의 건물을 통틀어서 칭하는 매스 로우 (Mass Row)는 오래된 기숙사이기 때문에 시설적인 측면에서는 최악이다. 우중충한 분위기와 어두운 조명에,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낡은 건물 특유의 퀴퀴한 냄새까지! 기숙사 방도 정말이지 코딱지만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드 매스는 기숙사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조용한 "집순이" 성향의 학생들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해서 방에 붙어있기보다는 다양한 캠퍼스 이벤트나 파티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뽀로로" 성향의 학생들이 주로 선호하는 기숙사이다.


학생식당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사이 유 (Psi U)라는 프랫 하우스와도 인접한 사우스 매스는 매스 로우 중에서도 특히나 1년 365일 시끄럽다. 콜리스 학생식당으로 야식을 먹으러 오거나 프랫 파티에 가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주말 저녁이면 도무지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밖에서 많이 떠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낡은 건물이라 방음이 잘 되지 않아 타격이 더 큰 것도 있다. 파티 피플이 모인 기숙사이다 보니 EDM 등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고 사람들을 방에 불러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일종의 프리게이밍 (pre-gaming)¹을 여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룸메이트인 송희와 함께 짐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피신했는데, 두세시간쯤 후에 돌아와 보면 보통 프리게이밍은 끝나 있고 시끄럽게 놀던 학생들은 본격적인 파티를 위해 프랫으로 옮겨 가 기숙사는 다시 조용해져 있곤 했다.


사우스 매스는 방음 뿐 아니라 환기도 잘 안되었다. “아, 냄새 또 나는 것 같다. 이번엔 어느 방일까?” 어디선가 냄새가 올라오면 나는 짜증이 잔뜩 올라온 상태로 방을 한 바퀴 크게 돌며 킁킁대기 시작했다. 생물학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송희가 한숨을 푹 내쉰 후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저번에 그 방인 것 같아. 이 쪽 방향에서 제일 심하게 나거든.”

사실 송희와 내가 매스 로우에서 사는 동안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주말이면 시도 때도 없이 옆방과 아랫방 등에서 올라오는 마리화나 냄새였다. 처음에는 마리화나 냄새가 어떤 건지도 몰랐는데, 사우스 매스에 오래 살다 보니 어느덧 마약 탐지견 만큼이나 그 특유의 냄새를 잘 알아챌 수 있게 되었더랬다. 


이웃에게 각종 민폐를 끼치는 학생들, 열악한 시설, 그리고 소음 같은 엄청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매스 로우는 인기가 많은 기숙사인데, 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점은 바로 캠퍼스의 핵심부라는 최적의 위치! 매스 로우는 학생들의 주요 생활권에서 모두 가까운 이른 바 “알짜배기 땅”에 있다. 베이커 도서관이 지척인 것은 물론, 세 곳의 주요 학생식당 중 두 곳이 매스 로우에서 1분 거리로 엄청 좋은 "식세권"이다. 기온이 영하 20도로 내려가는 일이 예사인 겨울 학기에는 밖에 나가는 것이 큰 결심이 필요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이런 지리적 이점은 기숙사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짐이 꽤 많은 편인 나는 방의 크기와 기숙사 시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임에도 사우스 매스에서 무려 4학기 동안이나 눌러 붙어 살았다. 이것은 절대 사우스 매스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사하기가 너무나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무려 4학기 동안이나 살았던 애증-주로 증-의 방)


¹프리게이밍 (Pre-gaming): 본격적으로 파티에 가기 전 친한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미리 모여 술을 마시고 노는 것


Written by Ha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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