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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8. 2021

다트머스 주거 먹이사슬의 최약체

Room Draw Doomsday

다트머스는 학생 90% 이상이 캠퍼스 내에 거주하는 기숙형 대학 (Residential College)이다. 1학년 때는 기숙사 거주가 의무이고, 2학년부터는 원한다면 캠퍼스 밖(off-campus)에 알아서 방을 구해서 자취를 해도 상관 없다. 그렇게 하는 학생들이 흔하진 않지만 말이다.


기숙사는 곧 집이나 다름없기에 신입생을 제외한 모든 다트머스 학생들에게 정말 중요한 "운명의 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숙사 추첨 (Room Draw)을 하는 날이다. 다음 학사년도를 위한 다트머스의 기숙사 추첨 과정은 이렇다. 일단 모든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순위 번호를 제공한다. 순위 번호는 무조건 선배들이 우선인데, 4학년이 될 학생들이 제일 앞 번호를 받고, 그 다음이 3학년이 될 학생들, 그리고 2학년이 될 학생들 순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다음 해의 4학년 중 가장 안 좋은 순번이 그래도 다음 해의 3학년 중 제일 좋은 순번보다는 높다는 뜻이다! (1학년은 신입생 기숙사 설문조사지를 작성해서 기숙사에 배정받기에 순번이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높은 순번일수록 먼저 살고싶은 기숙사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2학년 말과 3학년 말에 기숙사 추첨을 딱 두번 해봤다. 2학년 때는 비교적 중간 순위의 번호를 받았고, 3학년 때는 "우와 그것도 4학년 번호야?" 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안 좋은 번호를 받았다. 기숙사 추첨 자체는 상상 이상으로 스릴 넘치고 긴장되는 시간이었는데 단 몇초 안에, 새로고침 하나에 모든 방들이 사라지는, 한국으로 따지면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팅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도서관보다 기숙사 방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고, 수업이 끝나면 방으로 직행해 밥 먹을 때 빼고는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방순이기에, 기숙사는 내 삶의 질에 너무나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살고 싶은 기숙사 중 내 순번으로 가능해 보이는 곳들에 찾아가 사전 답사도 해보고, 나름대로 여러 요소를 고려해 심혈을 기울인 선택을 했다. 물론 2학년 순번은 대체로 안좋아서 선택지가 아주 넓진 않았지만 말이다.


다트머스 주거 먹이사슬 다이아그램

매해 기숙사 추첨은 "운명의 날"이지만, 1학년 말에 하는 2학년 기숙사 추첨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운명의 날"이다. 위 다이아그램에서 볼 수 있듯, 2학년은 다트머스 주거 먹이사슬의 최약체이기 때문이다. 세렝게티 초원으로 따지면 갸냘픈 다리를 가진 톰슨가젤급이라고나 할까? 신입생 때 설문조사를 통해 배정받는 1학년 전용 기숙사들은 물론 시설과 위치의 편차로 인한 어느정도의 좋고나쁨은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최악"이라고 할만한 곳은 없다. (아마도 리버 정도?) 하지만 2학년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4학년, 3학년 선배들이 먹고 남긴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톰슨가젤보단 하이에나에 가까운 듯도 싶다) 1인실은 2학년 치고 엄청 번호가 높아야 간신히 도전해볼까 말까하고, 2인실도 2인 2실인 좋은 2인실엔 가기 어렵다. 대부분의 2학년생 순번은 2인 1실이나 3인 2실같은 안좋은 찌꺼기 방밖에 갈 수 없는 순번이다.


찌꺼기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찌꺼기가 아예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트머스에는 디플랜이라는 특이한 학사제가 있어서 전교생들이 상시 캠퍼스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매 학기 캠퍼스에 있는 학생 수를 학교측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LSA (Language Study Abroad), FSP (Foreign Studies Program) 등의 프로그램에 참가해 해외에서 학기를 보내는 학생들도 있다. 그렇기에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기숙사 수는 전교생수보다 적다. 이 말은 즉, 2학년인데 순번이 매우 낮다면 기숙사 배정이 무조건 보장되던 1학년 때와 달리 구린 기숙사는 커녕 남는 기숙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학년은 주거의 질 측면에서만 보면 정말 최악이다. 1학년 내내 나름 학교가 지정해 준 보호구역 같은 안전지대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2학년이 되면 "어? 이제 너네 신입생 아니니까 알아서 해~" 하면서 바로 거친 야생으로 내던져지는 느낌이랄까? 1학년 때 1인실에 배정받아 안락하게 살다가 2학년 때 갑자기 3인 2실같은 안좋은 방으로 강등(?)되면 아무래도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만약 그나마 그 안좋은 방조차도 없어서 자취방을 알아봐야 한다면? 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다. 기숙사 추첨은 이제 2학년 올라가는 학생들에겐 가혹하다 못해 잔인하다. 그렇다면, 다트머스 주거 먹이사슬의 최약체인 2학년들은 어떻게 이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할까?


1) 룸메이트만이 살길이다!
다트머스의 기숙사는 1인실부터 최대 6인실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만약 기숙사 추첨을 할때 룸메이트를 지정한다면, 서로 룸메이트를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순번을 가진 사람의 순번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내 순번이 끄트머리 중의 끄트머리라 기숙사에 살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면, 룸메이트를 할 만한 친구 중 괜찮은 순번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 사람이 신청을 하면서 나를 룸메이트로 적어내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나와 송희는 2학년 때부터 룸메이트였는데, 내 순번이 송희 순번보다 괜찮아서 내 순번을 활용했었다.


선배 중 룸메이트를 할만큼 친한 사람이 있다면 더 좋다. 선배일수록 순번이 좋으므로, 선배의 순번을 활용해서 내 짬(?)에는 절대 갈 수 없는 좋은 기숙사에 사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4인실 중에는 '스위트(Suite)'라고 불리는 호실이 있는데 호실 내 4개의 방이 각각 있고 가운데 공용공간을 공유하는 형태이다. 사실상 1인실 4개나 다름없으므로 친한 그룹에서 학번이 제일 높은 사람이 스위트를 신청하면 순번이 구린 3명의 어린양들을 구제해줄 수 있다. 4인실 중에서도 시니어 아파트는 공용공간에 부엌까지 다 갖춰져있는 말그대로 방 4개짜리 "아파트"인데, 4학년 중에서도 순번이 매우 높은 편이어야 갈 수 있을만큼 인기가 많긴 하지만, 그정도로 순번이 좋은 4학년 선배와 마침 친하다면! 친한 사람들끼리 으쌰으쌰해서 신청하고 1년 내내 최상의 주거환경을 누릴 수도 있다.


2) 귀찮음을 감수하고 LLC 지원하기

만약 룸메이트를 할만큼 친한 사람들도  순번이 별로 안좋거나,  죽어도 1인실에 살고싶다면 나름 사용할  있는 꼼수가 있다. 바로 Living Learning Community (LLC) 지원하는 것이다. LLC, 강의실 밖에서 거주환경을 활용해 특정한 주제에 대한 배울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진 커뮤니티이다. 예를 들면 Chinese Language House 커뮤니티 내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면서 중국어를  빨리 배울  있도록 한다. Sustainable Living Center (SLC) 지속가능한 환경에 관심이 많은 모여살면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커뮤니이다. 에너지 소비는 최소화하고 쓰레기 배출은 최소화하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직접 채소를 길러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다양한 친환경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밖에도 다트머스에는 다양한 LLC 있다.


이러한 LLC들 중에는 1인실이 많은 곳이 심심치 않게 있다. 만약 본인에게 1인실에 사는 것이 정말 그렇게나 중요하다면 귀찮음을 감수하고 LLC에 지원서를 제출해보는 방법이 있다. LLC에 지원하려면 "왜 이 LLC에 참여하고 싶은지," "이 LLC에 산다면 내가 어떻게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 기나긴 지원서를 성심성의껏 작성해야한다. 일부 LLC는 학생들이 실제로는 별 관심도 없는데 1인실에 살려고 신청서를 작성하고 들어와서 이후 행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고 커뮤니티의 물(?)을 흐린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이전에 그 LLC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와본적이 있는지 등을 묻기도 한다.


LLC 지원 마감은 기숙사 추첨일 전이므로, LLC 지원을 통해 열악한 주거환경을 극복해보려는 내년 2학년생들은 미리 판단해서 가고싶은 LLC를 찾아보고 지원서를 작성해야한다!


3) 러쉬에 성공해서 그릭하우스로 이사가기

2학년 가을학기부터는 그릭하우스 (프래터니티와 소로리티)에 러쉬를 할 수 있다. 러쉬에 대해서는 향후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만약 러쉬 과정을 거쳐 어떤 하우스에 최종적으로 선발된다면, 2학년 겨울부터는 자신이 속한 하우스에 남는 방이 있다는 전제 하에 해당 하우스의 "하우스(각 하우스마다 실제로 집이 있다)"에 거주할 수 있다. 파티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하우스의 주거환경은 열악한 기숙사에 비해 나은 편이고, 하우스에 살면서 브라더나 시스터와 더 친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학년 가을학기에 살게된 기숙사가 너무 열악한데 마침 러쉬를 할 계획이라면 러쉬에 성공해서 자신의 그릭하우스로 이사를 가는 것 또한 다트머스 주거 먹이사슬의 밑바닥인 한 해를 살아남는 좋은 계획이 될 수 있다.


Written by Haeri

Edited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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