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uggles in North Fay 207
Fayerweather는 다트머스 홀 뒤편에 있는 3동짜리 기숙사 클러스터로, 주로 “Fay”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1인실은 거의 없으므로 아주 고학번인 거주자는 거의 없고, 주로 기숙사 추첨 (Room Draw)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2학년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방이 좁고 낡긴 했지만, 비교적 캠퍼스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Fay에는, 2인 1실, 2인 2실, 3인 2실, 4인 스위트, 6인 스위트 등 친구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방이 있다.
나는 2학년 겨울 학기까지 캠퍼스 밖에 있는 자취방에 살다가 봄 학기에 기숙사로 돌아온 관계로 기숙사 추첨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빈방 무작위 배정을 통해 동급생인 쌔미, 팔라비와 함께 North Fay의 3인 2실인 207호에 배정받았다. 무작위 배정인만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방 배정 결과가 나오고, 페이스북을 통해 쌔미와 팔라비를 검색해 채팅방을 열어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의예과 동기들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로 서로를 룸메이트로 신청했단다. 아마도 2인실이 부족해 나까지 묶어 3인실에 배정한 듯 했다.
“Study Hard, Party Hard”의 모토를 따르는 그녀들은 소로리티 시스터들로 평소에는 아침 수업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종종 파티에서 놀다가 새벽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반면, 영화와 미술을 복수전공하던 나는 가장 빠른 수업이 점심 이후였다. 일주일의 반 정도는 스튜디오나 방에서 밤새 작업을 한 후, 동이 틀 때쯤 잠들고 점심쯤 일어나 씻고 밥을 먹은 후 수업에 가는 패턴이니 그녀들과는 정 반대였다. 서로 이야기를 해보니 생활 패턴에 비슷한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어떻게 룸메이트로 배정받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쌔미와 팔라비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앨리안, 우리 생활 패턴이 너무 극과 극이다. 너만 괜찮다면 우리가 안쪽 방을 같이 쓸 테니 네가 바깥방을 혼자 쓰는 게 어때?”
3인 2실의 방은 바깥방과 안방으로 구성되어있다. 안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바깥방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주로 안방은 조용한 침대 방으로, 사람이 계속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바깥방은 공부 방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서로 생활 패턴이 워낙 다르기도 했고, 둘은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인 반면 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쌔미와 팔라비의 제안대로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기 때문에 아침 수업에 가는 룸메이트들이 씻고 준비를 하느라 부산해도 깨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제안대로라면 나는 방을 혼자 쓰는 것이니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흔쾌히 그녀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오, 나야 좋지! 그렇게 하자.”
이것은 North Fay 207호 저주의 서막이었다. 고작 10주동안 바깥방에서 지내는 동안 유독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느 금요일, 늦은 새벽 침대에 누워 막 자려던 참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티에서 놀다가 돌아온 쌔미랑 팔라비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내 침대에 같이 누우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불을 켜보니 웬 남학생이 속옷 차림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술이 꽤 많이 취해 있었다. 아마도 2층의 다른 여학생 방에서 남자 화장실을 가려고 다른 층으로 갔다가 방을 잘못 찾은 듯했다. (2층은 무려 여자 층이었다.) 나는 “자기야아, 왜에 그래애, 나 지금 완전 피곤해애애”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는 그를 문 밖으로 질질 끌어낸 후 재빨리 문을 잠궜다.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다트머스는 워낙 치안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게 귀찮기도 해서 문을 그냥 열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룸메이트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게 되었다.
“나 앞으로 금요일이랑 토요일은 문 잠그고 잘 거니까 파티 갈 때 열쇠 꼭 들고 다녀!”
그런가 하면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간만에 도서관에 가지 않고 방에서 과제를 하려는데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렸다.
‘평소엔 코 전혀 안고는 것 같더니, 피곤했나?’
나는 음악을 튼 뒤 이어폰을 꽂고 계속 과제를 했다. 한참 과제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무언가에 걸리는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계속 열어봐도 뭔가에 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뭐지?' 상황을 살펴보려고 10cm정도 열린 틈으로 보니 웬 거구의 남학생이 내 방문 앞에 대자로 누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쩐지 기숙사가 떠나갈 듯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라니, 내 방 바로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이야.... 나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팔을 넣어 그를 쿡쿡 쑤셨다.
“저기요! 저기요! 여기서 자면 안돼요. 좀 일어나 봐요! 저기요!!”
그런데 아무리 세게 찌르고 흔들고 소리를 질러도 그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딱히 술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10분간 그를 깨우려고 별 짓을 다 하다가 짜증이 난 나는 캠퍼스 경찰인 Safety & Security (S&S)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North Fay 207호인데요, 지금 웬 거구의 남학생이 제 방 앞에서 코를 골면서 자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네요. 이 남학생 좀 제발 치워주세요.”
곧, 듬직한 S&S 경찰들이 와서 남학생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S&S가 아무리 깨워도 남학생은 계속 꿈나라였고,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S&S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앞으로 30초 간만 더 당신을 깨울겁니다. 이렇게 깨우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구급차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남학생은 계속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구급차가 와서 그를 들것에 실어갔다.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병원이었을 그도 당황스러웠겠지만, 나에게도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