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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7. 2021

기말고사마저 연기시킨 초유의 허리케인

Hurricane Irene 

다트머스에서는 겨울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시험이 취소되는 일이 드물다. 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만큼 제설 노하우가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시험 전날 함박눈이 끝을 모르고 쌓여가면 신입생들은 혹시라도 시험이 연기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풀지만,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날에도 제설차는 꿋꿋히 염화나트륨을 뿌려가며 기어이 사람이 다닐 길을 뚫고야 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다트머스 학생들은 어느정도 짬(?)이 차면 날씨로 인한 휴강이나 시험 연기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다. ‘혹시?’ 하는 기대로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그냥 벼락치기를 하는 편이 성적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굳은 날씨에 강경한 대응을 보이는 다트머스지만, 허리케인 아이린이 상륙했을 때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100년만의 홍수”, “1999년 이래로 가장 규모가 큰 허리케인”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뉴스에는 연일 물에 잠긴 길과 집,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의 끔찍한 사연이 보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만 47명의 사망자가 나왔을 뿐 아니라, 강이 범람하며 홍수가 일어나 북동부의 각 주에는 수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고 했다. 집이 뉴저지인 수지 선배는 거대한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지붕 위로 쓰러진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장난 아니지?”

“오,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뽑히죠?”

“여기 우리 집이야.”

“헐!”


8월 끝무렵이던 당시, 다행히 대부분의 대학들은 방학중이었다. 계절 학기가 진행중인 북동부 지역 학교들 역시 이미 휴교를 했거나, 개강을 미룬 상태였다. 다트머스는 여름 학기 마무리인 기말 고사만을 앞두고 있었다.


‘에이… 설마 폭설이 내려도 휴교 안 하는 다트머스가 비 조금 온다고 기말을 연기하겠어?’


그간 다트머스의 전과(?)를 보아, 많은 학생들은 기말고사의 연기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강 건너 바로인 버몬트 주는 아이린으로 인해 굉장히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반면, 해노버에는 그냥 비가 조금 많이 오는 정도였다. 기숙사 밖 출입 자제 권고가 무색할 만큼 평소에 비 많이 오는 날씨와 비슷해 다운타운에 우비를 입은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트머스에서 이례적으로 기말고사 연기 결정을 내렸다. 더 큰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 때문이었는지, 집에 수해를 입은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결정이었는지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기말고사가 연기되었다는 공식 블릿츠를 받았을 때 많은 학생들은 시험이 연기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기뻐하면서도 예상을 빗나간 학교의 결정에 꽤 당황스러워했다.


문제는 기말고사가 연기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 혹은 버스표를 변경해야 하는 학생들이 우후죽순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일이라 대부분의 경우 무료로 변경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여행 일정이 꼬인 학생들과 무료 변경이 어려운 학생들, 한시라도 빨리 캠퍼스를 떠나고 싶은 학생들은 기말 연기에 대해 투덜거리기도 했다.


“아니, 비 조금 온다고 시험 미루는거 웃기지 않아?”

“내 말이! 폭설이 쏟아져도 얄짤 없더니 왜 비온다고 유난이야?”


시험을 연기해도 불만이 터져나오는 아이러니 때문인지, 아이린 사태 이후로 내가 졸업할 때까지 다트머스에서는 날씨로 인해 시험이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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