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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10. 2021

다트머스가 발명해 세계로 수출한 술게임

Pong, the Ultimate Sports of Dartmouth

깡촌에서 달리   없어서인지 몰라도, 다트머스 학생들은 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학교의 비공식적 마스코트가 맥주통인 케그(keg) 본따 만든 케기  케그(Keggy the Keg) 정도이다. (물론 학교측은 케기가 비공식적 마스코트인 것을 불편해한다...)

맥주 보관통인 Keg (왼쪽), Keggy the Keg (오른쪽)

이렇게 술고래들이 모인 다트머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술게임은 바로 비어퐁 (Beer Pong)이다. 흔히들 줄여서 퐁(Pong)이라고 부른다. 퐁은 미국 대학 전반에서 사랑받는 술게임지만 특히나 다트머스에서는 엄청난 사랑을 받는데, 퐁을 빼놓고는 다트머스의 밤문화를 논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트머스 학생들의 가장 보편적인 놀거리이다. 퐁이 지난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다트머스 학생들의 일상에 깊이 녹아있었던 만큼, 다트머스에서는 프랫 하우스 (Frat House)의 지하, 학생회관, 기숙사 휴게실 등 어딜 가나 탁구 테이블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퐁은 애초에 다트머스에서 유래되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트머스 유래설이 지배적이다.) 무려 50년대 학번인 동문들에게서부터 "다트머스에 다닐 때 퐁을 치고 놀았다"는 증언이 나온다니, 이 술게임은 다트머스가 만들어 세계에 수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깡촌 해노버에 위치한 다트머스의 지리적 특성상, 도시에 위치한 대학들처럼 근처에 술집이나 클럽이 없다 보니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즐기기 위해 개발해 낸 놀이거리가 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물론, 다트머스의 밤문화가 프래터니티 (Fraternity, 남학생 사교 클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퐁의 인기와 전승에 한몫 했을 것이다.


퐁은 탁구공을 쳐서 상대방 쪽 당구대에 놓인 술 컵에 맞추거나, 빠뜨리는 게임으로, 기본적으로 탁구의 규칙을 차용한다. 단식 탁구처럼 1:1로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복식 탁구처럼 2:2로 진행한다. 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탁구대에 종이컵을 배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트머스 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컵 배열법은 ‘나무(Tree)’ 그리고 ‘수풀(Shrub)’이다. Tree는 컵 11개를 1-2-3-5로 배열한 것이고 Shrub은 7개만 가지고 1-2-4로 배열한 것이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참여하거나 게임을 빨리 끝내고 싶을 때 Shrub으로 배열한다.

(Tree에서 하나가 모자라지만 대략 이런 모양이다, © Tracy Hunter)

퐁의 기본적인 규칙은 이렇다. 상대의 공이 종이컵에 맞으면 안에 들어있던 술의 반을 마신 후 컵을 원위치 시키고, 공이 종이컵에 빠지면 한 컵을 모두 마신 뒤 컵을 탁구대에서 뺀다. 이름이 비어퐁인 만큼 주로 맥주로 플레이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보드카와 오렌지 혹은 크렌베리 주스를 섞은 술로 플레이하는 경우도 많다. 맥주는 주로 키스톤(Keystone)이라는 싸구려 맥주를 사용해서, 프랫 베이스먼트 어디에나 키스톤 박스와 캔이 널부러져있곤 했다. 소로리티 (Sorority, 여학생 사교클럽) 베이스먼트에서는 맥주 대신 애플사이다(사과를 발효해 만든 달콤한 술)나 샴페인으로 컵을 채운 퐁게임을 흔히 볼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술 대신 물로 컵을 채우기도 한다.

(추억의 키스톤 맥주. 진짜 맛 없었다! 오줌 맛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냥 취하는게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매번 싼맛에 사서 마셨다)

다트머스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은 물론 평일 밤에도 프래터니티 지하에서 퐁을 즐기는 브라더와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행여 학교 축제 기간이라도 되면 퐁을 치기 위해서는 꽤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한 판의 소요 시간은 보통 15~30분인데,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칠 때에는 10분까지 단축될 수도 있다. 한편, 영 실력이 꽝인 폭탄들이 만났다면 한 판은 40~50분까지도 늘어지는데, 이 경우 지켜보는 사람들도 재미가 없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잘 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한 팀에 배치하는 것은 되도록 피한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치는 퐁이지만 한번 그 재미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릭 라이프가 워낙 다트머스 교우 생활의 중요한 부분처럼 여겨지고, 프랫 베이스먼트에서 노는 것이 밤문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퐁을 잘 치기 위해 따로 연습하는 학생들도 있다. 다소 유치하지만, 퐁을 잘 치면 주변 친구들의 인정을 받고 부러움을 한몸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 오후나 저녁에도 베이스먼트를 떠나지 않고 퐁을 연습하다가 학교 성적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고 하니, 다트머스 학생들의 퐁에 대한 열정은 정말이지 넘사벽이다. 특히나 소포모어 써머 기간 동안에는 각 프래터니티와 소로리티에서 대표 2명을 뽑아 퐁 대결을 펼치는 토너먼트가 열리기 때문에, "퐁 좀 친다"하는 2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하우스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 혹은 이미 대표로 뽑혔다면 자신의 하우스를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 밤낮으로 퐁 실력을 갈고 닦는다.


퐁이 어느 정도로 다트머스 밤문화에 중요한 부분인지는 졸업생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홈커밍 주말이면 학교에 돌아온 졸업생들은 으레 자신이 속했던 프래터니티나 소로리티를 방문해 퐁을 치고, 해노버가 아닌 타 도시에서 만나더라도 다트머스 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모였다 하면 퐁을 친다. 오직 퐁을 위해 일부러 비어 퐁 테이블이 마련된 술집에서 약속을 정해 밤새 게임을 즐기거나, 간이 퐁 테이블을 제작해 (넓은 판자를 쓰레기통 두 개 위에 얹으면 퐁 테이블이 된다) 퐁을 치는 열정까지 보인다. 이처럼 다트머스 밤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락거리인 비어퐁. 다트머스에서 퐁이 이렇게나 각광을 받는 이유는 깡촌에 워낙 할 것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퐁의 재미와 중독성이 정말 끝내주기 때문일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퐁을 칠 수 있는 술집들이 있다고 하니 혹시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도 코시국이 끝난 뒤 한번 도전해보시길...!


부록: 다트머스 퐁게임이 손잡이 없는 탁구채를 사용하는 이유

타 지역에는 탁구공을 손으로 던져 상대방의 컵에 집어넣는 방식의 퐁도 있다고 하는데, 다트머스에서 유래된 퐁은 특이하게도 손잡이를 자른 탁구채를 사용한다. 이렇듯 손잡이가 잘린 탁구채는 여성차별주의적인 전통이 남은 것이라는 썰도 있다. 다트머스는 원래 남학생만 다닐 수 있는 대학이었다가, 1972년부터 여학생을 받기 시작했는데, 재학중이던 남학생들이 학교의 결정에 반발하며 탁구채의 손잡이를 잘라버린 것이 유래라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손이 작아서 손잡이를 자르면 탁구채를 잡기가 어렵다나, 뭐라나... 당시에도 이미 퐁은 다트머스 문화의 큰 일부였기에, 남학생들에게 있어 손잡이를 자른 탁구채는 "봐라! 퐁조차 치지 못하는 여학생들이 어떻게 다트머스에 어울리냐!"는 항의의 의미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되게 치사하네!"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지금 다트머스의 여학생들은 손잡이가 잘린 탁구채로도 퐁을 잘만 치니 결국 당시에 반대했던 남학생들이 옹졸하고 편협하고 틀렸음을 멋지게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Written by Hye Ryung

Edited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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