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ks of being in the Middle of Nowhere
다트머스의 인시그니아에 새겨진 라틴어 모토는 Vox Clamantis in Deserto로, 영어로는 Voice Calling in the Wilderness, 한국어로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모토가 대놓고 인정하듯 다트머스는 광야에 있다. 광야라는 표현은 너무 거칠고 거창하고 성경에나 나올 것 같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트머스를 “아무것도 없는 곳 한가운데 (in the middle of nowhere)”에 있다고 표현한다. 적고 보니 "광야"나 "아무것도 없는 곳 한가운데"나 결국 같은 뜻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트머스가 깡촌에 있어서 캠퍼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 시각을 조금만 바꿔 보면 캠퍼스 주변에 산도 있고, 숲도 있고, 강도 있어서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할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다트머스의 대자연(!)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해본다.
(1) 카누/카약 타보기
다트머스 캠퍼스 서쪽으로는 아름다운 코네티컷강이 흐른다.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는 언제든 카누와 카약을 즐길 수 있다. 나는 2학년 여름학기에서야 처음으로 학기 중에 카누를 타러 가봤는데 생각보다 절차가 너무 간단해서 놀랐다. 예약도 따로 필요 없고, 캠퍼스 중앙 Green에서 한 15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레드야드 카누 클럽 (Ledyard Canoe Club)이라는 곳에 가서 학생증을 맡기면 저렴한 가격에 바로 배와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여태껏 한 번도 안 해봤나 싶었다.
한번 코네티컷강의 매력에 빠지고 나면 날씨 좋은 날 공부하다가 ‘아, 카누 타러 가고 싶다!’ 하는 순간이 자주 온다. 스트레스로 기분이 축 가라앉은 기말고사 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말고 바로 책을 싸들고 가서 카누 위에 동동 떠서 공부해보기도 했고, 햇빛 쨍쨍한 토요일에 친구들이랑 점심 먹다가 딱 30분만 타고 오자 해놓고 하루 종일 해질 때까지 놀다가 온 적도 있다. Ledyard에서 출발해서 조금만 노 저어 내려오면 Gilman Island라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이 섬에는 오두막집이 있어서 미리 예약하면 친구들이랑 가서 같이 저녁도 해먹고 하룻밤 재미난 추억을 쌓고 올 수 있다.
(2) 별 보기(Stargazing)
다트머스 졸업 전 꼭 해봐야 하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스타게이징 (Stargazing)이다! 롱디 중이라면 다트머스에 연인이 놀러왔을 때 꼭 함께 해보는 낭만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쵸우트 기숙사에서 조금만 더 캠퍼스 북쪽으로 걸어가면 오콤 연못(Occom Pond)이 있고 거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다트머스 소유의 해노버 컨츄리 클럽 (Hanover Country Club)이라는 골프코스가 나오는데, 날씨 맑은 날 밤 이 골프코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드넓은 하늘에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다트머스에서 스타게이징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몇 가지 팁! 첫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지 꼭 확인하자. 구름이나 안개가 조금이라도 낀 날이라면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멀리까지 걸어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둘째, 손전등을 들고 가자. 별이 잘 보이는 곳인 만큼 빛줄기 하나 없이 정말 새까맣게 깜깜하다. 가는 길이 약간 으스스할 수 있으니 연인이나 친구랑 같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셋째, 두툼한 겉옷을 챙겨가자. 해노버의 밤은 대부분의 계절에 매우 춥다!
(3) 애플 피킹(Apple picking)
다트머스는 뉴햄프셔주에 위치해있긴 하지만 거의 끝자락에 있어서 버몬트주와도 매우 가깝다. (캠퍼스에서 걸어서 버몬트에 갈 수 있을 정도!) 버몬트주는 미국에서 사과로 특히 유명한데, "버몬트 사과" 하면 한국의 청송 사과처럼 맛과 품질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트머스에서 해볼 수 있는 또 다른 활동은 다름아닌 애플 피킹, 즉 사과따기이다. 다트머스 캠퍼스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면 사과 따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과수원이 나온다. 나는 신입생 때 한인학생회에서 운 좋게도 좋은 멘토 언니, 오빠를 만나서 차도 없고 캠퍼스 바깥의 세상이라곤 아무 것도 모르는 1학년이 첫 학기 때부터 애플 피킹을 가보는 호사를 누렸다.
애플 피킹은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 과수원에서 나눠주는 기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나무에 달린 빨갛게 잘 익은 사과들을 따내면 되는데 본인이 딴 것은 전부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어서 세 사람 모두 한 아름 가득 사과 보따리를 안고 돌아왔다. 한동안 내 방 냉장고에는 맛있는 사과가 잔뜩 들어있어서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몇 개씩 나눠주곤 했는데 사과 덕에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참, 과수원에서 파는 애플사이다도 맛이 끝내준다.
(4) 하이킹
다트머스는 무려 교과서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그 유명한 "애팔래치안 산맥" 위에 있다. 이렇게 쓰니 뭔가 다트머스 캠퍼스가 깊은 산 속 꼭대기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애팔래치안 산맥이 해노버 메인 스트리트를 관통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게다가 다트머스는 캠퍼스 부지 외에도, 뉴햄프셔 북부에 무려 110km²에 달하는 대자연과 다양한 산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 땅은 1807년 뉴햄프셔주가 다트머스에게 증여한 땅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해마다 애팔래치안 산맥을 따라 트래킹을 하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큰 배낭을 둘러메고 다트머스가 위치한 해노버를 찾곤 한다. 축복받은 환경 덕에 다트머스에는 아웃도어 클럽 (Dartmouth Outing Club, DOC)이 유독 활성화 되어있고, 원한다면 학생 누구나 DOC 클럽을 통해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다양한 활동들에 참여할 수 있다.
만약 등산을 좋아하고 차가 있다면 다트머스는 천국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등산도 별로 안 좋아하고 대학생활 내내 차도 없었다. 이런 나를 3학년 봄학기 때 다트머스에서 첫 번째로 등산의 길로 인도해 준 것은 은진이라는 연세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였다. (연세대에서는 다트머스로 매년 2명씩 교환학생이 오는데 항상 느끼는 것이 다트머스 학생들이 4년 내내 해볼까 말까 한 많은 것들을 이 교환학생들은 똑 부러지게 잘도 찾아서 1년 동안 꽉꽉 채워 다 경험해보고 간다는 것이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이다!)
원래 이 날은 차가 있는 다른 사람들이랑 등산을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그냥 기숙사에서 뒹굴뒹굴 주말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은진이가 캠퍼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Mink Brook Preserve라는 트레일이 있다며 나한테 같이 가보자는 것이다. 어차피 등산을 하려다 취소된 거니 어디든 등산을 가도 나쁠 것 없겠다 싶어서 나는 은진이와 둘이 길을 나섰다.
은진이와 함께 Mink Brook Preserve에 가면서 나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다트머스에서 보낸 3년 내내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던, 아니 걸어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길을 처음 걸어봤다. 해노버는 정말 작은 동네라서 차가 없으면 생활반경이 아주 제한적이고, 동네에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범위 이상으로 모험을 떠날 일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동안 학교에서 15분 걸어가면 나오는 CVS 편의점이 이 동네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너머 새로운 장소에 차가 아닌 내 발로 걸어가고 있자니 뭔가 신선한 해방감이 들어 날아갈 것 같았다.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다트머스 있는 동안 Mink Brook Preserve는 꼭 한번쯤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길도 전혀 가파르지 않고, 졸졸졸 맑은 시냇물도 흐르고, 캠퍼스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학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쳇바퀴 같은 학교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날 편안한 힐링의 장소가 될 것이다.
Written by Song He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