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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Apr 29. 2019

은밀한 상상 속 진실을 써라

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

나는 “가장 잘 아는 것을 써라”라는 격언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렇다면 유대인 남성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독신 여성 과학자나 로봇의 인생을 어찌 알았을까? 그리고 노동자 계급 출신의 실직자이자 싱글맘이었던 조앤 K. 롤링은 마법학교에 다니던 소년 마법사를 어찌 그리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작가들은 어린아이, 노인, 남성, 여성, 외계인, 왕, 농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글로 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치밀한 조사 덕분일까? 예리한 관찰력? 비밀의 뮤즈 불러내기?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잘 아는 것을 써라”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그게 아니다. 그것은 진실, 즉 인간으로서 아는 것을 쓰라는 뜻이다.

  여성과 남성은 진짜로 그렇게 다를까? 우리는 모두 거절당했을 때의 상처, 사랑의 기쁨을 알지 않는가? 그리고 감정이라는 이 모든 무수한 변주에도 불구하고 미개간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근원적으로 같지 않을까? 오늘날 불치병의 불가항력은 백 년 전의 불치병과 다를까?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것과 경험으로 체득한 것의 괴리는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간단하다. 알고 있는 진실을 써라. 감정적으로 이해한 것을 써라. 직접 경험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비법이다.


  나는 영웅이고 악당이고 어린 소녀이고 연쇄살인범이다. 나는 토끼 울타리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 유괴되었던 두 소녀 중 한 명이다. 나는 테르모필레에서 엔터프라이즈호 함교 위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나는 스파이더맨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다. 나는 마약 때문에 아이를 방치한 중독자 엄마다. 작가로서 나는 적어도 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이름은 군대다. 수가 많기 때문이다.”(마르코 복음 5장에서 인용)

  작가가 등장인물에게 그럴듯한 삶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작가가 어느 정도 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으로서 공유하고 공감한 경험을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진실하게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어쩌면 그렇지 않은 자신을 끄집어내야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의심의 눈으로 내게 묻는다. 어떻게 연쇄살인범을 실감나게 쓸 수 있는지. 나는 여주인공과도 잘 맞는다. 과연 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절대적인 힘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을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길 바랄까? 아이를 잉태하고 생명을 키워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내가 알고 있다고 알아주길 원할까?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출산은 기생에 가까운 공생의 경험 아닌가? 그렇다면 그건 몸속에 뭔가가 자라는 여자, 그리고 축복받지 못하는 임신에 관한 공포 영화의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돌연 튀어나오는 폭로, 끔찍한 통찰, 어두운 감정적 전개에 결코 뒷걸음치면 안 된다. 아무리 추악하고 괴기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진실을 찾아내고 지면 위로 옮겨야 한다. 폭로를 두려워하면 시시한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를 믿어라.

  나는 이미 그런 글을 많이 써봤다.


  영화 <클루리스 Clueless>가 성공한 원인은 무엇일까? 인정을 받기 위한 소녀들의 투쟁에 모두 공감했기 때문일까?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는 어떠한가? 주인공 자말이 견뎌낸 고통과 승리감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우트 Doubt>는? 자기검열의 강력하고 끈질긴 메시지와 내적・외적 의심을 알 수 있어서? 이 영화의 작가들은 불량소녀, 인도인 노숙자, 어린이 학대 신부 혹은 엄청 권위적인 수녀였을까?

  그러니까 도전하라. 자신의 진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넣어라. 두려워하지 말고. 필요하면 비밀 글쓰기 노트를 만들어라. 자신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당황케 하는 일들을 여기에 적어라. 결코 인정한 적 없거나 단 한 번도 글로 쓴 적이 없는 아이디어와 개념 말이다. 멍청해지고 추해지고 역겨워지고 끔찍해지고 엉뚱해져라. 상상할 수 있는 형용사로 스스로를 검열하지 마라. 원한다면 나중에 모두 지워버려도 된다. 하지만 첫 단계는 두려움을 떨치고 여자이자 아이이자 살인자이자 유니콘이며 천사이기도 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상상을 진실하게 써라. 우리는 대개 내면 어딘가에 진실을 꽁꽁 숨겨두고 있기에 그 진실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시나리오 쓰기 실전 연습


  등장인물들과 시나리오를 진실하게 탐구하라. 당신이 남자라면 인물을 여자로 만들어보라. 당신이 어리다면 노인으로 만들어보라. 당신이 외향적이라면 내성적인 인물로 만들어보라.


  나는 킬러다. 사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일로서만 죽인다. 어느 날 밤까지는 그랬다…….


  나는 똑똑하고 염세적인 의사다. 나는 외로움을 인정하기 두렵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까칠하게 말할 것이다. 그녀가 걸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나는 나이 든 남자와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다. 그가 내게 상처를 줄 게 뻔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무슨 일이 있건 그 남자와 함께하려 했는데…….


  나는 마약중독 때문에 은행이라도 털어야 할 만큼 절망적이지만 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결코 생각 못 했다…….


  나는 비밀이 있는 세일즈맨이다. 밤마다 나는 여장을 하고 거리로 나간다. 어느 날 밤 나는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고 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마크 세비 Mark Sevi
<죽은 자는 춤출 수 없다 Dead Man Can’t Dance>, <딥 레인지 Arachnid>를 비롯해 열여 덟 편의 각본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는 한편, 영화계와 창작 기법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할리우드 인기 작가 95명이 공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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