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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Apr 25. 2019

부정적인 생각의 가치

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

코미디 작가가 되어 엄청 좋은 일 하나는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일 전부를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은 코미디의 탄알이다.



  동료인 앤디와 나는 사무실에서 만날 때 종종 그날 아침에 겪은 불쾌한 일들을 가지고 20분간 투덜거린다. 라디오에서 들은 소식이나 신문에 실린 바보 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헐뜯곤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광고나 사회 경향을 욕하기도 한다.

  또는 시나리오를 통째 다시 쓰라는 쪽지를 받을 때도 있다. 이러한 일 역시 짜증을 유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준비 작업을 할 때 씩씩거리며 말한 내용 중 일부가 시나리오 속의 농담이나 심지어 스토리라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는 일을 했고 부정적인 생각의 힘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것은 모두 그 나름의 효용 가치가 있다.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하지만 명심하라. 부정적인 기운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사는 멍청하고 부당하고 시시하고 망가진 세상에 화가 나서 맹렬히 비난하는 중이라면, 잠시 멈추고 거기에서 ‘개그’를 뽑아낼 수 있을지 보라. 코미디는 사람들의 잘못이나 실패에 대한 이야기고, 그것이 잘 먹히면 비논리적인 세상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래리 데이비드와 제리 사인펠드가 드라마 <사인펠드 Seinfeld>에서 만들어낸 조지 코스탄자는 역대 시트콤 속 인물 중에서 단연코 최고다. 허영심 강한 구두쇠이자 신경증 환자인 조지는 부정적인 말과 소소한 불만을 끝없이 내뱉는다.

  나와 앤디가 딜런 모란이 원안을 쓴 시트콤 <블랙 북스 Black Books>를 각색할 때 우리는 런던살이에서 오는 짜증을 집어넣었다. 도심의 열기를 처리하는 문제라든가, 대형 체인 서점들의 삭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집어넣었다. 컴퓨터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좌절은 SF 시트콤 <하이퍼드라이브 Hyperdrive> 속에 표현되었다. 일과 관련해서 누군가 우리를 미치게 하면, 우리는 꾹 참고 싫은 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화면에 뜰 날은 반드시 온다. 우리의 일은 쓰레기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재활용이라는 멋진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일을 그르치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고 원고 속에 장면으로 등장시킨다. 멍청한 실수 속에 황금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당신도 수시로 투덜대거나 푸념하거나 불평하라.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가? 이런 것에 다른 사람들 역시 신경 쓸 가능성이 높다. 작가는 타인의 우울한 일들을 활용해 웃음을 만드는 일을 하는 운 좋은 사람들이다. 만일 이 일로 다른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면 정말로 운 좋은 인생일 테고.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징징거릴 일이 없다고. 자신에게 나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매일 축복을 헤아리는 데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글쎄, 이 교훈을 확장하면 이러하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 당신이 들은 모든 이야기, 당신이 세상에서 알아낸 모든 것에는 글로 쓸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만사가 연구 대상이다. 명심하라. 하루나 이틀만 이 점을 살짝 의식하고 그 후에는 이러한 자의식은 버리고 당신의 삶을 찾아라. 그러고 나서 이야기가 막힐 때, 당신이 겪은 일을 소송당하지 않을 정도로 각색해서 시나리오에 집어넣어라.



시나리오 쓰기 실전 연습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모두 기록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솔직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면 ‘솔직하지 못하다’ 항목을 추가한다. 만일 당신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친구 하나를 골라 그에 대한 목록을 만든다. 작성이 끝나면 그 내용을 과장한다. 만약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약간 허둥대는 정도에 그친다면, 언제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항상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먹을 것에 별로 관심이 없으면, 먹는 거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누군가를 만든다. 등장인물이 만들어질 때까지 결함을 섞어본다.

  이제 첫 번째 인물이 진심으로 짜증스러워하는 결함을 가진 다른 누군가를 생각해본다. 두 인물이 꼭 정반대일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없는 이유는 100만 1개나 된다. 그중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이유 하나를 택한다. 그들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장면을 쓴다.


  글을 다 썼으면 나가서 즐긴다. 당신은 즐길 자격이 있다. 다음 날 글을 보고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지 살펴본다. 어떤 점이 더 웃겨질 수 있는가? 어떤 점에서 짜증이 나는가? 비판력과 불안감을 자극해 이전보다 더 웃기게, 매끄럽게, 쉽게 글을 고쳐본다. 하지만 일단 글을 썼으면 부정적인 감정은 잠시 떨쳐버린다. 글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한다.

  곧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게 될 것이다. 이를 드라마로 만들고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보낸다.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가 퇴짜를 맞거나, 고료가 바라는 액수에 못 미치거나 친구가 질투할 만큼이 아닌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을 그다음 시나리오의 연료로 삼는다. 당신도 이제 쇼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들였다.



케빈 세실 Kevin Cecil
영국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수상한 각본가다.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드라마를 공동집필했다. 작품으로는 드라마 <블랙 북스 Black Books>, <하이퍼드라이브 Hyperdrive>, <슬래커 캐츠 Slacker Cats>, <리틀 브리튼 Little Britain>, <아만도 이아누치 쇼 The Armando Iannucci Show>가 있다. 또한 팀 버턴 Tim Burton 감독의 영화 <유령 신부 The Corpse Bride>와 <노미오와 줄리엣 Gnomeo and Juliet>, <해적 Pirates>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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